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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했어야지" "수치스러운 일" 성폭력피해자 두번 울리는 말말말

안희정·조민기 '미투' 고백자에 쏟아진 2차 가해
"성폭력 신고 거짓이란 광범위한 편견 개선해야"

[편집자주]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네가 만만해 보였던 거 아냐?" "끝까지 저항했어야지."

이런 말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너뜨리는 '2차가해'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 10명 중 1명은 "성폭력 피해는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을 들었다.

'피해사실을 알려봐야 이로울 것 없다' '네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네게도 책임이 있다' '끝까지 저항했다면 성폭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등의 발언이 그다음으로 흔한 2차피해 경험으로 꼽혔다.

서지현 검사(45)와 김지은씨(33) 등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가 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가운데 증언의 의도를 의심하고 신상정보를 유출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2차 가해가 여전한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안희정 전 지사(53)를 성폭행·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김씨의 경우,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중엔 '합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 '미투가 아니라 불륜, 공작이다'는 식의 글이 난무한다.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거나 의도를 의심하는 내용이다.

이른바 '받은글' 형태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유포되자 김씨는 12일 언론을 통해 자필 편지를 공개하고 "저와 저희 가족은 어느 특정세력에 속해있지 않다"며 "악의적인 얘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최근 일부 누리꾼은 고(故) 조민기씨에 의한 성추행 피해를 실명 폭로했던 배우 송하늘씨(28)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사람 죽였으니 참 좋겠다' '미투로 죽여놓고 뭘 그리 당당하냐' '죄책감이 들지 않나'라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 송씨가 조씨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수치심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도 전형적인 2차피해 유형이다. 남성 교수진의 성추행 폭로가 쏟아졌던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의 한 재학생은 지난 6일 익명 커뮤니티에 "(타과 학생들이) '쪽팔려서 연영과 이제 과잠(학과 점퍼)도 못 입네'라며 웃었다"며 "저희는 가해자가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왜 가만히 있었냐'는 말도 폭력적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채 '왜 수차례나 성폭행을 했느냐'고 가해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왜 수차례나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느냐'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잊고 살라'는 말 역시 2차 피해를 유발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 상담한 성폭력 2차 피해 사례 중 94건은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주변인과 가족에 의해 이뤄졌는데 '네가 참아라' '없던 일로 해라"며 사건을 외면한 경우가 많았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사회적 편견과 무고고소 등 법적 위협,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경찰 신고를 꺼리게 하는 요소라며 이를 한국 정부가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위원회는 "남성 위주의 조직들이 만들어낸, 성폭력 신고가 거짓이라는 광범위한 편견을 비롯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수치심과 제도적 편견이 여성의 경찰 신고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성폭력에서 유달리 독보적인 2차피해는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벽"이라며 "2차피해를 물리쳐야만 성폭력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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