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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대기업만 규제하면 된다? 김상조의 교각살우

[편집자주]

 
지난 14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재벌 총수 일가는 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며 SI 분야를 가장 앞서 지목했다. 김 위원장은 "논란이 계속되면 공정위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으름장까지 놨다.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국내 1위 SI 업체인 삼성SDS의 주가가 14% 급락하며 시가총액 2조3000억원이 증발했다. 삼성SDS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 위원장 해임까지 요구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지난 19일 "비상장사 주식 매각을 의미한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김 위원장이 지목한 대기업계열 SI업체들 대부분은 1990년대 그룹 계열사 전산실을 한데 모아서 설립한 IT전문기업들이다. 한곳에 모아 전산관리 비용도 줄이고, 여기서 쌓인 노하우로 그룹외 계열사의 전산시스템 구축사업도 펼치기 위해서였다. '아웃소싱'이 대세일 때였다. 실제로 대기업 SI업체들은 그룹내 물량을 점차 줄이고 외부사업을 수주하면서 오늘날 종합IT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금융기관을 비롯 정부공공기관의 상당수도 대기업 SI업체들이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물론 김 위원장 말대로 그룹 내부의 일감을 몰아주면서 경영권 승계에 이용하거나, 총수 일가가 배당으로 사익을 챙긴 사례도 없지 않다. 중소 소프트웨어(SW) 기업의 설자리를 잃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진흥법을 제정해 일정규모 이상의 공공시장에 대기업이 입찰하지 못하도록 막아두고 있다. 

그런데 왜 김상조 위원장은 대기업 SI계열을 콕 집어서 규제 필요성을 언급한 것일까. 김 위원장은 "선진국 대기업들은 SI 계열사를 보유하지 않는다"면서 "독립적인 SI업체와 거래하면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SI업체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필요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SI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일갈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전산시스템 구축과 운영을 LG전자에게 맡길 수 있을까요?, LG전자가 SK C&C에 전산시스템을 맡길 수 있나요?"라고 반문한다. 기업의 전산시스템은 회사의 핵심자산이다. 이를 다른 그룹에 맡긴다는 것은 안방을 내주는 꼴이다. 중견기업이 맡기에 덩치들이 너무 크다. 결국 IBM이나 HP 등 외국계 IT기업들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로 공공시장에 대기업 SI 참여를 제한한 이후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SI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현재 대기업 SI업체들은 '성장 위기'를 겪고 있다. 그룹 물량으로 성장하는데 한계를 느낀지 오래다. 공공물량까지 막히니 해외시장을 뚫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는 '상생' 전략아래 중소협력파트너와 동반진출하고 있다.

대·중·소의 균형잡힌 성장을 통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고 공정경쟁을 유도해야 하는 공정위원장이 '대기업만 잘라내면 시장이 공정해진다'는 식의 접근은 국내 SI기업들의 해외수출 기회마저 날려버리는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 

"공정위는 공정경제뿐 아니라 혁신성장을 위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 19일 김상조 위원장이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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