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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 대체복무 마련하라"…내년까지 법개정(종합2보)

헌재 7년만의 판단 "소수자 소리 듣는 게 민주주의"
처벌조항은 합헌…"형사처벌, 입법 불비에 따른 것"

[편집자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2018.6.28/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2018.6.28/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한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를 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다만 입영거부에 대한 처벌 조항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28일 병역법 제5조 제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6대 3(각하)의견으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다만 당분간 법 조항을 계속 적용하기로 하고 2019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한까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음 날부터 법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병역법은 제5조에서 현역, 예비역, 보충역을 비롯해, 사회복무요원, 공중보건의사 등 병역 종류를 정하면서도 대체복무 조항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종류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의사결정구조에서 다수와 달리 생각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병역종류조항이 추구하는 '국가안보' 및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공익은 대단히 중요하나 이 조항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공익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반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함으로 인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최소 1년6개월 이상의 징역형과 그에 따른 공무원 임용 제한 및 해직, 각종 관허업의 특허·허가·인가·면허 등 상실, 인적사항 공개, 전과자에 대한 유·무형의 냉대와 취업곤란 등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공익 관련 업무에 종사하도록 한다면, 이들을 처벌해 교도소에 수용하고 있는 것보다는 넓은 의미의 안보와 공익실현에 더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고, 국가와 사회의 통합과 다양성의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헌재는 이들의 입영거부를 형사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4(합헌)대 4(일부위헌)대 1(각하)의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병역법 위반에 대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을 선고해 왔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종류조항의 입법상 불비와 '양심적 병역거부는 처벌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해석이 결합돼 발생한 문제일 뿐, 처벌조항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는 다른 공익적 가치와 형량할 때 결코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며 "처벌조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병역기피자를 처벌하는 조항으로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현재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이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아니한 상황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므로, 처벌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심판에서 재판관들은 병역법 '병역종류 조항'과 '처벌조항'에 대한 헌재 결정과 관련해 소수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은 병역종류 조항에 대한 심판 자체가 부적합하다며 각하의견을 냈다. 안 재판관 등은 "대체복무는 일체의 군 관련 복무를 배제하는 것이므로, 국방의무 및 병역의무의 범주에 포섭될 수 없다"며 "병역종류조항에 대체복무를 규정하라고 하는 것은 병역법 및 병역종류조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조항을 신설하라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처벌조항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은 여전히 엄중하므로, 다른 나라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합헌의견을 냈다.

조용호 재판관도 보충의견을 통해 "병역의 종류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는 병력의 구체적 설계, 안보상황의 예측 및 이에 대한 대응 등에 있어서 매우 전문적이고 정치적인 사항을 규율해야 하는 속성상, 입법자가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재량 하에 결정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안창호 재판관도 헌법불합치 결정에 반대하며 △학계·법조계·종교계 등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가 형 집행 종료 즈음에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인지 여부를 판정, 사면을 하는 방법 △공직 임용, 기업의 임·직원 취임, 각종 관허업의 특허 등 취득 등과 관련해 불이익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정역에 복무할 때, 그 정역을 대체복무에서 고려될 수 있는 내용으로 하는 방법 등을 대체복무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창종 재판관은 청구인들이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처벌조항에 따른 것이므로, 병역종류 조항에 대한 심판은 그 자체로 부적법해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진성·김이수·이선애·유남석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병역종류조항의 위헌 여부는 처벌조항의 위헌 여부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으므로 심판의 요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또 처벌조항에 대한 일부위헌의견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벌을 부과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2011년 8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국가안보 및 병역의무의 형평성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며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더라도 이러한 공익의 달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판단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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