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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코리아(Korea)의 원조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이승한의 ‘몽골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

[편집자주]

이승한의 ‘몽골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
이승한의 ‘몽골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

일본인 저작가 시오노나나미의 최근 신간 ‘그리스인 이야기 1, 2, 3’ 권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1990년대 공전의 히트를 쳤던 그녀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때문일 것이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를 열심히 읽으면서 ‘우리는 왜 이런 저작가가 없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만한 저작가는 충분히 많으므로. 역사 저술가 중 그런 능력자를 대라면 고려 역사에 집중하는 ‘이승한’ 저자를 먼저 들 수 있겠다.

역사의 고전인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카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것은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에 현재의 필요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한이 고려 역사에 집중하는 이유는 조선을 포함한 근현대사의 해석에는 현재의 필요가 복잡다단해 역사가로서 마음껏 소신을 펼치기 어려워서다. 전화위복이랄까. 저자의 그런 선택으로 인해 통일신라와 조선 사이에서 실종돼버린 ‘코리아(Korea)의 원조 고려’가 생생하게 부활하고 있다.

이승한은 이전 저작 ‘고려무인 이야기’ 4권 시리즈로 역사학도와 애호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망이 높았다. 어떤 이유로 그 책이 절판되는 바람에 시중에서는 상당한 웃돈을 얹어야 중고책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고려 역사 중 원나라 지배시기를 다룬 이승한의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 완간이 주목 받는 이유다. 시리즈의 마지막 4권 ‘몽골 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는 우연히도 ‘그리스인 이야기’와 출판 시점도 엇비슷하다.

918년 태조 왕건이 건국한 고려의 31대 왕은 ‘충’자로 시작하는 원나라 지배시기의 마지막 충정왕을 이은 공민왕이었다. 왕명이 ‘충민왕’이 아닌 것으로도 짐작이 되듯 공민왕은 원나라의 영향력을 벗어나 고려의 쇄신을 시도한 개혁군주였다. 개혁에는 어김없이 수구세력과 기득권 층의 저항과 반동이 따른다.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에 오른 행주 여자 기황후의 친정 식구들과 부원배 세력 등 공민왕의 개혁도 난관이 많았다. 돌격대장이 필요했던 공민왕은 사원 노비의 아들이자 승려였던 ‘신돈’을 선택했으나 결국 숙청해야 했다. 뒤이어 ‘출생의 비밀 사건’에 얽혀 공민왕이 살해당하면서 개혁은 실패, 이성계의 조선 건국 작업이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에는 종묘(宗廟)가 있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이다. ‘전하, 종묘사직을 지키시옵소서’의 그 종묘다. 종묘의 한쪽 귀퉁이에 특이한 작은 별당이 하나 있는데 다름아닌 고려 공민왕의 신위를 모신 신당이다. 필시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개혁군주 공민왕을 잊지 못하는 고려 백성들의 여론을 의식했던 게 분명하다. 공민왕의 왕비도 원나라 보루테무르의 딸 노국대장공주였는데 그녀 또한 친정의 뜻을 거스르면서 남편의 개혁정치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런 연유일까? 공민왕 신당에는 특이하게 왕과 왕비를 함께 그린 영정이 걸려있다.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는 1권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2권 ‘혼혈왕, 충선왕-그 경계인의 삶과 시대’, 3권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4권 ‘몽골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이다. 이 시리즈의 독서에 만족도가 높다면 ‘고려 무인 이야기’도 출판사에서 복간을 검토하고 있다니 기다려볼 만하다.

◇몽골 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 /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펴냄 /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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