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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S 제도폐지' 한발 물러선 정부…연구자들은 '부글부글'

제도개편 약속했던 과기정통부 "출연연별로 개선안 마련해야"

[편집자주]

지난 12일 서울시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전문가 토론회에서 'PBS는 적폐다'라는 피켓을 들고 일부 연구자들이 PBS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있다. © News1
지난 12일 서울시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전문가 토론회에서 'PBS는 적폐다'라는 피켓을 들고 일부 연구자들이 PBS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있다. © News1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을 옥죄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전면폐지까지 고려했던 정부가 결국 공을 각 기관에게 떠넘겼다. 

1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발표한 '과학기술계 출연연 PBS 제도 발전방안(개편방안) 추진방안'에 따르면 출연연은 각기 'PBS 개편안'(수입구조 포트폴리오)을 수립하도록 했다. 과기정통부와 연구회는 각 기관이 수립한 개편안에 대해 타당성만 검토한다.

각 출연연들은 역할과 책임(R&R)에 따라 앞으로의 인력운영계획과 수입구조(출연금·정부수탁·민간수탁), 지출구조(인건비·연구비·경상비) 등을 PBS 제도 개편안에 상세하게 담아야 한다.

PBS제도는 지난 1996년부터 출연연에 도입됐다. 이는 출연연이 외부 연구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대학·타 출연연 등과 과제 수주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오히려 연구자들이 과제를 따기 위한 단기 성과에 매몰시켜 출연연의 경쟁력을 낮추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여러 차례 PBS 제도 개편을 시도했지만 연구개발(R&D) 예산과 직결된 부분이어서 근본적으로 개편하는데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이번 정부에서도 PBS 제도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올 1월 업무보고에서 "PBS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PBS 전면 폐지'까지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2일 공개된 정부의 'PBS 제도 개편방안 추진방안'은 정부가 총대를 메고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연구기관별로 알아서 PBS 개편안을 수립하라는 것이 골자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을 출연연들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성일 과기정통부 연구기관지원팀장은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전문가 토론회'에서 "여러가지 방안을 고려했지만 결국 출연연별 특성이나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기관별로 포트폴리오를 받아 확정하는 안으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개선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현장 소통이 매우 중요하며 출연연 포트폴리오 안이 최대한 이행 가능하도록 과기정통부도 부처간 협력 등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달말까지 각 출연연의 포트폴리오를 제출받겠다는 입장이지만 25개 출연연 가운데 절반 이상은 PBS 제도개선 방안을 자체 수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 있는 연구원들의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자 모임 관계자는 "과도한 PBS 제도탓에 세금이 낭비되고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PBS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TRI는 전직원 2222명 중 과반이 넘는 1345명이 PBS 전면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을 모아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다른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이번 방안을 보면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PBS 개선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한데 이번 방안은 각 기관의 경영진과 기획자들의 역할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정부차원에서 출연연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보장해줄 것인지, 출연연이 원하는만큼 예산안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없이 각 출연연들이 성공적인 PBS 개편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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