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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살인훈련? 게임이 동네북인가

[편집자주]

 
 
게임이 또다시 비난 폭격을 맞았다. 지난 15일 연합뉴스가 50명의 사망자를 낸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총격 테러의 용의자가 총싸움 게임 '포트나이트'로 살인훈련을 했다고 보도하면서다. 뉴스를 공급하는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가 게임탓을 하자 다른 언론사들도 테러의 원인이 게임에 있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진실은 이렇다. 용의자 브렌턴 태런트는 범행전 테러의 동기와 목적 등을 담은 자문자답 형식의 선언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는 선언문에서 비디오 게임, 음악, 문학, 영화로 폭력성과 극단주의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서 "그렇다. '스파이로 더 드래곤3'가 종족민족주의를 가르쳐줬고, 포트나이트가 나를 적들의 시체 위에서 춤을 추는 킬러로 만들었다"고 답했다.

'스파이로 더 드래곤3'와 '포트나이트'는 모두 귀여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그래픽으로 유명한 게임들이다. 범행 원인을 게임의 폭력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비꼰 것이다. 태런트는 그러면서 "아니다"라고 게임과 자신의 범행은 무관하다고 명백히 밝혔다. 그가 총격 테러를 벌인 동기는 백인우월주의와 이민자 혐오였다.

게임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국내 언론 보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멀리 뉴질랜드까지 갈 것 없이 지난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또 다른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 이용자 간에 일어난 선릉역 칼부림 사건 때도 그랬다. 이승조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근본적으로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기사를 썼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 게임산업은 그동안 수출과 일자리를 늘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게임산업 수출액은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액의 절반 이상인 42억3000만달러(약 4조8019억원)에 달했다. 음악과 방송,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른 장르 수출액을 다 합쳐도 게임 하나에 못 미쳤다. 2017년 국내 게임산업 종사자는 1년 전보다 10.7% 늘어난 8만1932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세 살 어린아이도 동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유튜브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 청소년들도 온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그러나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을 거론하는 사람도 스마트폰 자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게임에 대한 사회적 잣대는 유독 혹독하다. 물론 게임중독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사실이고, 게임업체뿐 아니라 사회가 게임중독에 대한 예방에 나서야 마땅하지만 덮어놓고 '게임이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

총격범 태런트가 포트나이트로 살인훈련을 했다는 식의 언론보도들도 게임에 대한 이 같은 편견과 시선이 빚어낸 오보가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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