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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창업정신 잇는 스타트업 3인의 젊은이

[아산의 기업가정신①] 딥메디·클라썸·마이리얼트립 인터뷰
"아산나눔재단 지원 통해 '사람'을 만났다"

[편집자주] 21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18주기를 맞아 '뉴스1'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그의 도전 정신을 잇고 있는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과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을 취재했다.

한국종합전시장(KOEX)에 전시된 포니2 모델과 선박 모형 앞에 서있는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1980년대 초)© News1
한국종합전시장(KOEX)에 전시된 포니2 모델과 선박 모형 앞에 서있는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1980년대 초)© News1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청년은 네 번의 가출 끝에 쌀가게 점원이 됐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청년은 이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자동차를 만들고 허허벌판에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를 만든 회사의 대표가 됐다. 

주인공은 18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정 명예회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이봐, 해봤어?"라는 물음으로 응축된 그의 도전 정신은 현재도 많은 기업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뉴스1은 정 명예회장의 창조 정신을 계승하고 미래세대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자신만의 사업을 이끌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이들은 아산나눔재단이 주최하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해 수상한 회사의 대표들이다.  

◇"혈압도 키, 몸무게처럼 편하게 알 수 있는 사회 만들 것"

대학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던 이광진 '딥메디' 대표(34)는 "창업은 6개월만 해보고 학교로 돌아오겠다"라는 지도교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1년 정도만 더 공부하면 학업을 마칠 수 있었지만 투자 제안을 받고난 뒤 생각해 보니 사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딥메디는 별도의 휴대폰 카메라만 있으면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손가락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면 혈액이 빛을 흡수할 대 반사되는 빛의 세기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별도의 장비가 없어도 10초만에 측정이 가능하다. 데이터의 정확도도 계속해서 데이터를 쌓아가면서 높여가고 있다. 

창업 당시 이 대표의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주변에도 창업에 대한 우려를 갖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 대표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의 수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투자 제의가 이어지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광진 딥메디 대표가 15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9.3.1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이광진 딥메디 대표가 15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9.3.1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이 대표는 창업 이유에 대해 "만성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어 주기적으로 혈압을 재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별도의 장비가 필요해 불편을 겪고 있는 경우가 있다"라며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키와 몸무게처럼 모든 시민이 자신의 혈압은 당연히 알고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이 대표의 목표다.

다만 이 대표에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의료기기로 등록받기 위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임상 시험을 위해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현재로서는 큰 산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측정한 혈압 등의 건강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을 이미 개발했지만 의료기기로 등록되지 않아 상용화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제한으로 딥메디는 현재 보험사, 병원들에 자신들의 기술 알고리즘을 적용한 제품 개발을 돕는 B2B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보험사와 병원들은 딥메디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고객들에게 질병 발생의 가능성 등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통하지 않는 수업 환경 바꾸고 싶었어요"

"대학교 첫 수업 기억나세요? 나는 못 알아듣겠는데 다들 아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잖아요.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 사이의 그런 장벽을 해소하고 싶었어요."

이채린 '클라썸' 대표(23)가 창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 강의실에서 만연한 '소통의 부재'를 마주하면서부터였다. 당시 학과 대표를 맡았던 이 대표는 수업 시간에 불통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에는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을 이용해 수업마다 단체 대화방(단톡방)을 만들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곧 단톡방이 다른 학과로, 다른 학교로 퍼져나갔다. 이에 이 대표는 단톡방이 가지는 한계를 보완해 강의별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클라썸'을 만들었다. 

기존에도 각 대학에는 '학업 관리시스템'이 존재했다. 이런 시스템의 학생을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면 클라썸은 '쌍방향 소통'에 목적이 있다. 먼저 클라썸은 채팅과 SNS의 소통 방식을 활용한 사용자 환경을 제공해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메일같이 별다른 양식을 덧붙일 필요 없이 SNS에 올리듯 질문을 올리면 이에 대해 채팅을 통해 답변하는 방식이다. 

이채린 클라썸 대표(아산나눔재단 제공)© 뉴스1
이채린 클라썸 대표(아산나눔재단 제공)© 뉴스1

질문에 대해 같은 궁금증이 생기는 수강생은 '저도 궁금해요' 기능을 통해 공감을 나타낼 수 있고 많은 수강생이 궁금해 하는 질문은 'HOT(핫) 질문'으로 선정된다. 교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질문에 답할 수 있어 서로 도우며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질문 수는 늘어났지만 교수들은 답변이 이루어지지 않은 질문만 별도로 골라서 조회할 수 있어 오히려 효율성이 올라갔다. 

사업모델의 핵심은 '단순함과 편리함'에 있었다. 기존에 수강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하려면 이메일에 '예의를 갖추는'  문장을 덧붙이는 등 불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클라썸은 이 과정을 제거했다. 또 사용자들에게 친숙한 이용환경을 제공하면서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단순함과 편리함의 결과는 학습능률 향상과 소통의 원활함이 됐다. 설문 결과 클라썸을 사용한 수강생 62%가 교수, 조교들과 친밀해진 것 같다고 답했다. 이메일을 통하면 며칠씩 걸리던 답변은 4시간(클라썸 평균 답변 시간)으로 줄었다. 지난해 말 기준 21개 학교와 학원 기관에서 클라썸을 도입했고 사용자 수는 3000명을 넘어섰다. 

이 대표는 교육 분야에서의 사업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경직된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민간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일단 소수를 통해 적용해 보고 그 교육방식이 좋으면 더 늘려가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학교를 세우는 방법도 있고, 현재는 막연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상품의 질"

2012년 창업한 이동건 대표(32)의 마이리얼트립은 스타트업 중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업체 중 하나다. 자유여행 플랫폼을 제공하는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이뤄진 거래액은 지난해 1300억원을 넘어섰다. 회원수는 180만명까지 늘었고 직원도 창업 초기 2명에서 120명으로 늘었다. 

이 대표는 성장의 배경에 "남들이 가지지 않고 있는 유니크한 상품을 다양하게 제공한 것"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에 있어서 기존 고객들이 가장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던 '능력 없고 불친절한 가이드'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사업 모델로 삼았다. 여행지에 실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검증 과정을 통해 가이드로 선발하고 관광객들과 이들을 연계했다. 이런 가이드들은 기존의 패키지여행 가이드가 제공할 수 없는 경험들을 고객들에게 맛보게 해줬다. 긍정적인 후기가 쌓였고 사용자는 늘어났다. 

가이드에 대한 불만을 사업으로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선배 창업가들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한차례 창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다른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한 창업 강연을 찾았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이렇게 가이드 투어를 연계하는 사업으로 시작한 마이리얼트립은 현재 액티비티, 입장권, 교통 패스, 렌터카에 더해 최근에는 숙박과 항공권 서비스까지 추가하면서 종합여행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뉴스1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뉴스1

이 대표는 사업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절박함'이라고 했다. 그는 "첫번째 창업은 사업이 아니라 재밌는 프로젝트 정도로 생각했더니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라며 "두번째 창업에는 정말 잘하고 싶고 간절했기 때문에 창업과 관련한 강연도 듣고 많이 알아봤다"고 전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창업가들이 '잃을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기가 막힌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오히려 절박함이 없어 곧 창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며 창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이 간절함을 가지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창업자들이 사업 아이템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인 앱이나 홈페이지 개발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중요한 것은 차별화된 아이템을 개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은 창업 초기 전용앱도 없었고, 결재 시스템도 없어 이메일을 통해 예약을 받았다. 불편한 시스템이었고 하루에 최대 20개팀의 고객만 받을 수 있었지만 판매하는 상품이 좋으니 고객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예약을 했다. 

◇ "아산나눔재단 통해 '사람'을 얻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3명의 '이 대표'들의 모두 아산나눔재단에서 주최하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다. 대회에 참가하면서 창업에 가장 크게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세 대표는 상금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이채린·이광진 대표는 대회 본선에 올라 만나게 된 '멘토'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두 대표는 모두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을 발굴·지원하는 단체) '크립톤'의 양경준 대표로부터 멘토링을 받았다. 두 대표는 멘토링을 통해 사업 방식과 목표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채린 대표는 "멘토를 통해 사업의 비전을 훨씬 넓게 잡을 수 있었다"라며 "대회 수상을 기점으로 투자를 받을 때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광진 대표도 "저희는 기술밖에 없었는데 사업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동건 대표의 경우 멘토링 프로그램이 없었던 1회 대회에 참가해 멘토들로부터 직접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재단이 가지고 있는 넓은 네트워크가 사업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동건 대표는 "사업이 초기일수록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재단을 통해 많은 분들을 소개받았다"라며 "재단의 소개로 만난 사람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아산나눔재단은 현재 이 3명의 대표에 이어 새롭게 창업에 도전할 젊은 대표들을 찾고 있다. 재단은 제8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참가자를 오는 4월30일까지 모집한다. 참가 신청은 대회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으며, 대회는 지역설명회, 사업실행, 결선대회 순으로 6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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