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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에 무방비 노출'…여성 가스 점검원들의 눈물

[편집자주]

민주노총 울산본부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와 여성위원회 조합원들이 21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5.21/뉴스1 © News1 조민주 기자
민주노총 울산본부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와 여성위원회 조합원들이 21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5.21/뉴스1 © News1 조민주 기자

# 2018년 8월 중순 오후 7시30분께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위해 벨을 눌렀습니다. 집 안에 큰 개가 있어서 고객님께 개를 잡아 달라고 말하고 점검을 하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옆으로 쳐다보니 고객이 하의를 벗고 있었습니다. 그 고객의 하체가 개한테 가려져서 옷을 벗고 있는 지 몰랐습니다. 놀라서 머리가 하얘졌지만 돌발사항이 있으면 안 될것 같아 참고 점검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 2018년 2월 서부동의 한 아파트에 점검을 갔을 때인데 그 집이 어떤 회사 숙소였어요. 회사복 차림 남자가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점검을 마치고 설명을 하는데 아저씨 한명이 실실 웃으면서 '이쁜 아줌마 몇 살? 몸매가 어떠니...', '다음에도 아줌마가 점검 와'라는 등 반말과 성희롱에(옆에 다른 남자도 웃고) 도망치듯 나와 계단에 앉아 울었어요. 일 때문에 화를 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부글부글 참으며 한참을 울다 다시 일을 하러 갔었어요.

# 2012년 7월경 방어동의 아파트에서 '가스 안전점검 나왔습니다' 했더니 '잠깐만요'라고 말해 옆집 먼저 점검을 했습니다. 다시 갔더니 상의를 탈의한 상태에서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고객이 돌아서는데 나체였습니다. 도시가스 점검원을 어떻게 생각했으면 저런 행동을 할까 싶어 아랫집에 가서 엄청 울었어요.

여성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의 성희롱 사례 중 일부다. 가스점검 업무를 하는 대다수가 여성이며 고객의 집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서 업무를 하는 특성상 성희롱과 추행의 위험에 쉽게 노출돼 있지만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회사나 행정청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17일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의 한 여성 안전점검원은 "언니들 나 정말 힘들었어요"라는 문자를 동료들에게 남긴 채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이 점검원은 동료들의 빠른 대처로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지난 4월초 한 원룸에 안전점검을 나갔다가 남성에게 감금, 추행위기를 당하고 탈출하는 일을 겪고난 뒤 생긴 트라우마로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울산본부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와 여성위원회는 20일 오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하고 예방하지 못한 경동도시가스와 울산시는 책임 있는 자세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여성 점검원들에게 매월 1200여 건에 달하는 점검 건수가 배정되고 이 중 97%를 완료하지 못하면 임금이 삭감되는 성과제를 운영하고 있어 위험 속에서도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안전점검원들이 하루 8시간 정상근무를 진행했지만 행동에 회사는 태업을 했다며 임금을 삭감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회사가 마련한 가스검침원 성희롱 대책 매뉴얼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고객이 식사대접을 하기 원하는 경우→고맙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신체적 접촉을 시도할 경우→신속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함을 알리고 자리를 피한다 △음담패설 할 경우→당황하지 말고 못들은 척 담담하게 업무적으로 말을 돌린다 △예방대책으로 '동료와 함께 동행 한다'고 내용을 정해놓고 있지만, 실제 근무시에는 1명만 배치하는 등 전혀 대비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2015년 점검원 성추행 사건 이후부터 안전점검원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과 재발방지 계획 수립을 촉구 해왔지만 가스요금에 포함된 인건비 결정의 책임이 있는 울산시와 회사가 요구를 묵살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사측과 울산시에 △가스안전점검 업무 2인 1조 운영 △개인할당 배정과 97% 완료 성과체계 폐기 △가스안전점검 예약제를 실시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 마련 △성범죄자 및 특별관리 세대를 점검원에게 고지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편 경동도시가스서비스센터분회는 안전 점검원들의 안전에 대한 대책 없이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지난 20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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