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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박지후 "이병헌 선배님, 딸 역할하면 되겠다고…좋아"(인터뷰)

[N딥:풀이]② "아나운서 꿈꾸다 시작한 배우…'벌새' 찍고 확신 생겨"

[편집자주]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벌새'(김보라 감독)의 은희는 당차고 영민하지만 조금 외로운 아이였다. 집에서는 생업으로 바쁜 부모님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막내딸이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구박을 받는 '날라리'였고, 남자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했다. 조금씩 어긋난 관계 속에서 외로웠던 중학생 소녀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영지 선생님(김새벽 분)과의 우정을 통해 성장한다. 

영화 속에서 은희를 연기한 2003년생 배우 박지후(16)는 똑부러지고 당찬 고등학생이다. '벌새'를 찍을 당시 주인공 은희와 나이가 같은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1994년을 살았던 어느 소녀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김보라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박지후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영화를 본 어른들은 세대와 국적을 막론, '은희 얘기는 내 얘기'라고 주장하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박지후는 마치 1994년을 살았다 온 것 같다고 했다. '복고'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 과거의 한 시점이 이제 2003년생 소녀에게도 특별한 감정과 기억들을 쏟아내게 하는 시간이 됐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지만, 플레이리스트에는 영화 속 등장하는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같은 것'을 넣어두고 종종 듣는다. SNS로 친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게 일상이지만, 삐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테이프로 녹음은 어떻게 하는지도 영화를 통해 배웠다.

대구에 살고 있는 박지후는 '벌새'의 홍보 활동을 위해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실제 성격은 '벌새'의 은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은희처럼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하지만 은희보다 더 수다쟁이다. 친구들은 말많은 박지후가 홍보 활동 때문에 서울에 올라올 때면 '허전하다'며 카카오톡을 보내고는 한단다. 책을 많이 읽고 다이어리도 열심히 쓰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박지후의 꿈은 중년이 됐을 때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베를린영화제 등 전세계 15개 영화제에서 25개 상을 수상한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를 연기한 박지후와의 깊은 인터뷰를 공개한다.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N딥:풀이]① '벌새' 박지후 "마스크 특이하니 성형하지 말라고"(인터뷰)에 이어>

-'벌새'의 시나리오를 많이 읽었겠다.

▶책 읽듯이 읽었다. 2차 오디션을 보기 전에 손대본을 받았다. 은희가 아무래도 대사가 많지 않으니까, 대사에 집중하기 보다는 은희의 감정에 집중했다. 이때 은희가 얼마나 기뻤을지, 설렜을지를 떠올리면서 읽었다. 엄마와 대화하고, 현장에서 감독님과 대화하고 그랬다.

-성수대교 사건을 알고 있었나.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 잘은 몰랐을 것 같다.

▶알고 있었는데 자세하게 몰랐다. 그 사건이 있었다 정도다.

-좋아했던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도 있나.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 사건을 알기 위해서 부모님한테 여쭤보기도 하고, 찾아보기도 했다. 연기할 때는 나에게 언니가 있으니 '만약에 언니가…' 하는 상황을 가정해 연기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벌새' 촬영을 마무리 할 때쯤이었다. 그래서 (연기를 하며)촬영이 잘 마무리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던 것 같다. 실제로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기도를 하고 하니까, 눈물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다.

-'벌새'를 찍고 난 후 1994년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을 것 같다. 이전에는 아무 관계 없는 시대였다면, 이후에는 조금 더 특별한 시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1994 하면 '복고' 이 정도 단어만 생각났는데 이제는 내가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 것 같다. 영화를 통해 접했으니까. 그래서 94년도 뉴스 기사가 뜨면 그 시대 사람인 것처럼 보게 되기도 하고 계속 떠올렸던 것 같다. 추억 회상하듯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한 느낌일까.

▶그렇다. 연기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벌새' 스틸 컷 © 뉴스1
'벌새' 스틸 컷 © 뉴스1
-박지후에게도 영화 속 영지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있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 꿈이 아나운서였다. 그 때 꿈을 응원해주시면서 책 2권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그러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벌새' 상영할 때 선생님을 잠깐 뵀다. 선생님은 아기 때문에 영화를 못 보셨지만, 기사도 찾아보셨다. 선생님의 카카오톡 한 줄 소개가 ''벌새' 파이팅'이다. 영지 선생님을 보면서 선생님이 많이 생각이 났다. 개봉하고 나서도 선생님께 연락했다. 전주에 사시는데 전주에 상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거리가 멀다고 하셔서 상영관이 있으면 좋겠다.

-'벌새'를 찍은 직후에 봤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고등학생이 돼서 보는 느낌이 다른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볼 때는 마냥 좋았다. 그 큰 화면에 내 얼굴이 나오는 게 좋았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마냥 좋았다. 지금은 내가 부족한 점들이 보인다. 발음이나 발성이나, 걸음걸이가 어색하다든지 하는 게 보이더라. 워낙 '벌새'를 많이 봐서 그런 점들을 체크해나가고 볼 때마다 좋은 장면이 바뀐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본다.

-요새 좋았던 장면은 무엇이던가.

▶가족들이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내가 '김대훈이 저 때렸어요' 하고 말하고 수희 언니와 눈이 마주친다. 그 신의 다음이 한문학원 계단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이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가족이 그냥 넘어간 그런 것에 대한 서운함, 속상함과 동시에 일상이니까 무덤덤함이 드러나서 '짠한' 장면이었다.

-영지 선생님 역할을 한 김새벽과 연기할 때는 어땠나.

▶실제 김새벽 배우님이 은희한테 하는 대사인데 그게 나에게 와닿는 경우도 많았다. 극중 은희가 '제가 불쌍해서 잘해주시는 거 아니죠?' 물어볼 때 영지 선생님께서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 안 해도 되지?' 하고 대답해주실 때 실제로 나 역시 안도했다. 김새벽 배우님의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연기할 때 많이 가르쳐 주셔서 든든했고, 내가 영지 선생님처럼 대하고, 배우님도 저를 은희처럼 대하고 연기했다.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말을 무척 잘 한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나.

▶좋아하지 않는데 잘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적은 만족스러운 정도로 나온다. 중학교 때는 집필고사를 치면 전교권에 들었는데 아무래도 (활동을 하는 고등학생 때는) 수행평가 빠지는 게 많아서 총 점수는 낮게 나온다. 중간 기말은 잘 한다.

-책 읽는 것도 좋아하나.

▶초등학교 때는 다독왕이었다.(웃음) 지금은 시간도 없고, 필요한 권장 도서를 읽는 편이고, 에세이집도 많이 읽는다. 막강의 '욕설'이라는 에세이집이 있는데 리뷰가 좋아서 사게 됐다. 많이 어렵기는 하다. 20대의 사랑 이야기라서.(웃음)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이어리를 쓰는데, 다양한 어휘들이 쓰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글쓰는 걸 좋아해서 웬만하면 고급스럽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는 것 같다.

-배우이면서도 고등학생이다. 두 가지 역할을 소화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두 개를 병행하니 남들보다 시간이 부족하고, 아쉬움이 크기도 한데 그래도 나는 그렇게 시간을 투자 못하는 것 치고는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것을 쭉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웬만하면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대학 진학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연극영화과 전공으로 지원할 생각인가.

▶연영과 쪽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만약에 성적이 잘 나와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으면 다른 전공도 해보고 싶다. 제일 해보고 싶은 전공은 심리학과다. 해보고 싶다.

-심리학과? 독특하다. 배우로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관심이 가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계기는 있었다. 언니가 범죄 심리 쪽으로 진로를 잡고 있어서 나도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관심이 간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봐도 추리하고 하는 게 좋더라. 심리가 재밌을 것 같다.

-배우를 하겠다고 처음 마음 먹었던 계기는 언제인가.

▶처음에 꿈은 아나운서였다. 초등학교 때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방송 쪽을 접해보면 좋겠다 생각해서 하게 된 거였다. 그 전에는 계속 카메라랑 익숙해 지려고 잡지 모델, 학생 잡지 모델을 하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첫 단편영화 찍었다. '나만 없는 집'이라는 단편 영화였다. 그걸 찍고 만난 게 '벌새'다. '나만 없는 집'을 찍을 때 재밌긴 하지만, 진로로 선택해야겠다는 확신은 안 들었다. '벌새'를 찍고 나서 이렇게 연기해야 내가 즐겁고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짜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이 진짜 확신을 갖고 있으면 하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했다.

-연기의 어떤 점이 매력인가.

▶내가 '벌새'를 촬영하면서 94년을 살아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접해보고 여러 시대를 살아볼 수 있다. 그게 연기 아니면 할 방법이 없는 거 같아서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고 매력을 느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여러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자체가 좋다.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연기파 배우 이병헌을 비롯해 유명한 배우들이 많은 BH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있다. 회사의 선배들을 볼 기회도 있었나.

▶아무래도 대구에 살아서 오랜 시간동안 선배님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짧게 인사드리고 가고는 했는데, 그 중에서 이병헌 선배님이 나중에 딸 역할을 하면 되겠다고 유머처럼 말씀해주셔서 그게 되게 기분이 좋았다.

-롤모델이 있나. 어떤 배우를 닮고 싶다거나.

▶옛날부터 한지민 선배님을 존경했다. 왜냐하면 한지민 선배님이 나온 작품을 다 봤다. '입덕'하게 된 계기는 '두개의 빛 일루미노' 때였다. 연기를 잘하고 좋으셔서 의미있는 공식 행사나 이런 데 많이 참석한다. 그런 면들에 반했다.

-한지민을 직접 볼 기회도 있었나.

▶봤다. 뒤에 후광이 느껴졌다.

-연기할 때와 공부할 때를 제외하면 무엇을 하나. 취미 같은 게 있나.

▶이동할 때 음악을 듣는 편이고, 영화도 자주 보는 편이다. 다이어리를 자주 쓴다.

-다이어리에 무엇을 쓰나.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쓴다. 나중에 책을 펼쳐보면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적어놔서 회상할 수 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 보다는, 글로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다. 사소한 것들을 쓴다. 짝 바꾼 것, 뭐 먹었는지도 쓰고, 사소한 거 하나하나라도 한줄씩 꼭 쓴다.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노래는 무슨 노래를 듣나.

▶요즘에는 인디 음악에 빠졌는데 민수라는 가수랑 검정치마를 좋아한다. 프롬 노래도 좋아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그냥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중년 배우가 됐을 때 지금의 내 나이의 사람들이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성품과 인간미를 갖춘 배우가 되고 싶다. '롱런' 할 거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도 출연했었다. 드라마 출연은 어땠나.

▶영화는 준비 기간이있는데 드라마는 빨리 빨리 해야한다. 처음 하는 거라서 되게 힘들기도 했고, 그만큼 더 많이 배웠다. 배역은 사연있는 아이였는데,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자기가 비밀을 갖고 있는데 말을 안 하다가, 막판에 말을 하게 돼 일이 해결되는 역할이었다.

-차기작이 있나. 혹은 오디션 볼 계획이 있는 영화가 있다면.

▶'벌새' 관련 활동을 다 하고 나서 열심히 오디션 보러 다니고 싶다.

-엄마가 배우 활동을 많이 지원해주나.

▶엄마에게는 언니도 있는데, 언니가 고3이라서 중요한 시기인데도 나 혼자 서울을 보낼 수 없다. 아빠는 일을 해야하고. 그래서 나 때문에 언니를 기숙사로 보냈다. 그만큼, 이런 활동을 하기까지 가족들의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그만큼 더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은 회사가 생겨서 엄마가 마음 편안하게 언니한테 신경쓸 수 있는 여건이 돼서 다행이다.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박지후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희망사항은 '벌새'가 개봉했으니 좋은 성적을 갖고 상영하다가, 다음에 또 다른 작품을 만나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무슨 역할이든 장르든, 감사히 할 마음이 있지만 아직 십대고 하니까, 발랄한 걸 해보고 싶다.

-'벌새' 홍보를 해달라.

▶벌새 정말 좋은 작품이니까, 많이 봐주시고, 또 상영관이 적어서 아쉽다는 글들을 많이 보고 있다. 주변에 입소문도 많이 내셔서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힘 실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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