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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한일관계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소녀상 전시된 日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14일 폐막
日 관객들, 전시중단·'위안부' 피해자에 부끄럼 알고 미안해 해

[편집자주]

지난 8일 일본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서 열린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의자에 앉은 기자의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지난 8일 일본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서 열린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의자에 앉은 기자의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지난 9일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展)·그 후' 전시가 열리는 일본 나고야(名古屋)시 전시장.

높은 전시장 입장 경쟁률을 뚫은 35명 관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관객들은 주먹을 꽉 쥔 채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압도당한 듯 보였다.

누군가는 소녀상의 손을 잡기도 했고, 의자에 앉아 소녀상과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무릎을 꿇은 채 소녀상을 지켜보는 관객도 있었다. 이들의 눈빛과 표정에는 '위안부'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기획전은 지난 8월1일 개막하고 불과 사흘 만에 중단된 바 있다. 

소녀상은 물론 한반도 침략 주범인 쇼와(昭和) 일왕(히로히토·裕仁)의 사진을 태우는 영상 등 과거 정부나 극우 인사들의 압박에 의해 제대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일본 우익세력들과 정치인들은 이 전시의 중단을 목표로 압력을 가했다.

기획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테러 협박을 하거나 검열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중단시켰다.

소식을 듣자마자 헛웃음이 났다. 그 무엇보다 자유로워야 하는 예술이 21세기에 통제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치사상적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열에 나서는 건 독재정권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가처분 신청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겨우 전시가 재개된 지난 8일, 취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기자의 눈에는 그들이 못마땅해 보였다.

심지어 지난 7월부터 일본 정부가 행한 대(對)한국 수출 규제로 반일감정이 곤두서있었다.

그러나 기획전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그들은 전시가 중단된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고,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1400명가량만 볼 수 있었던 전시를 위해 14일 폐막까지 총 7일간 1만3298명의 사람이 모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60대 일본인 여성은 "일본 정부가 한국을 적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한다"며 "전시가 진작에 재개돼야 했다"고 말했다.

80대 일본인 할머니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조각가의 강연에 와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면 죄송하고, 용서해달라고 전해 달라"고 울면서 말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규제하고, 우익세력이 나서고는 있지만 실제로 만난 많은 일본 시민들은 '옳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달리 보였다. 오카모토 유카 등 기획전 실행위원들과 전시 참여작가들, 지식인들, 시민들의 노력이 고마웠다.

맹자는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정의라고 했다.

기자와 대화한 일본인들이 옳지 못함을 알고 부끄러워했다는 점은, 아직 많은 일본인들이 정의롭다는 증거일 것이다.

일본인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 전시인 줄 알았던 곳에서 희망을 봤다.

20세기 초반 한일관계사에서 정의와 부끄러움을 아는 일본 시민들이 건재하고, 이들을 존중하는 한국 시민들이 있는 한 절망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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