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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40년 풍경화' 메타세쿼이아길 사라지나

개포동 재개발 단지 나무 5만여 그루중 20그루 남아
전문가 "지역 역사…공원 조성 변경이나 이식 방법도"

[편집자주]

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재개발 지역 내 메타세쿼이아 길 모습, 수령 40년 가량된 '도심 속 거목'이다. 2019.10.30/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재개발 지역 내 메타세쿼이아 길 모습, 수령 40년 가량된 '도심 속 거목'이다. 2019.10.30/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올 봄부터 사람의 흔적이 사라졌죠. 재개발은 주민에게 좋겠지만…박원순 시장님은 '나무 3000만 그루 심기 운동'하신다는데 이런 큰 나무, 쉽게 베는 건 아쉽지 않을까요?"

지난달 30일 강남 한복판, 개포동은 재개발이 한창이다. 지난 4월과 7월, 종합상가와 아파트를 각각 점거했던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 관계자와 주민 등이 마지막으로 자리를 비운 뒤로 개포주공1단지 펜스 안은 공사 차량만 간간이 드나들고 있다.

이 현장 가운데에 메타세쿼이아 길이 나 있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어 단풍이 보기 좋지만 이 풍경도 어쩌면 올해 가을이 마지막일 수 있다. 

철거 예정인 51동 옆 세로로 난 길에 메타세쿼이아 22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중 10그루는 높이가 아파트 5~6층에 해당하는 20m에 이르고 직경도 1m가 넘는 '도심 속 거목'이다. 위기에 처한 도심 허파를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뉴스1도 동참했다. 

"이렇게 길을 따라서 나 있는 예쁜 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서영애 연세대 겸임교수(조경기술사)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는 "메타세쿼이아가 빨리 자라는 편이긴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이런 나무를 구경하긴 쉽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삭막한 무채색 공사장 가운데 나무들은 자연의 색채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재개발 지역 내 메타세쿼이아 길(이성민씨 제공) © 뉴스1 DB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재개발 지역 내 메타세쿼이아 길(이성민씨 제공) © 뉴스1 DB

지금은 22그루만 남았지만, 개포주공 1단지에만 5만여 그루 나무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주민 이주 뒤 초고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 구획 정비를 할 때 나무들은 잘려 나갔다. 남은 22그루는 개포주공 아파트에서 12년간 살았던 이성민씨와 일부 주민들이 강남구청에 제안해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

재건축 조합 측은 "나무 보존을 검토하자"는 이씨 등의 주장을 받아 들여 일단 벌목을 중단했다. 기존 아파트 등 구획 설계와 이 숲길의 공존을 파악할 때까지 임시로 숨을 붙여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확인한 경계측량 결과 도로예정지가 숲길 정중앙의 8그루가량을 관통하면서 겹치는 탓에 "존치가 쉽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

"주민들의 추억과 환경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길이잖아요." 이씨는 굴삭기로 뽑혀 나뒹구는 다른 나무들의 뿌리들 옆에서 메타세쿼이아를 바라보며 안타까워 했다. 

이씨 등은 숲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쏟았다. 주민 300여명과 숲길 존치·이전을 위한 청원과 서명운동 내역 등을 강남구에 내기도 했다. 구청 관계자는 "사유재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으며, 설계상 공원부지 밖에 있는 탓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 답변만 내놓고 있다. 정순균 강남구청장도 이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재개발 지역 내 메타세쿼이아 길의 모습 2019.10.30/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재개발 지역 내 메타세쿼이아 길의 모습 2019.10.30/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이씨 등의 희망은 조합과 협의해 마지막으로 나무를 기념하는 것이다. 이미 뽑혀버린 나무들을 기리면서, 환경단체 서울그린트러스트 등과 힘을 더해 향후 다른 지역에서는 도시계획단계 전 나무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알리겠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나무당 몇백만원 수준 비용이면 나무들을 보존할 수도 있긴 하지만 회의적인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우향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국장은 "재단 기금 모금 등을 통해 나무를 이식하거나, 숲을 기억하는 공간 등을 만들 수 있는데 이는 서울시 시정방향과도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앞서 박 시장은 지난 4월 기후변화 주간 행사에 참여,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과 관련해 "나무 3000만 그루를 심으면 도시 운명이 바뀐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재건축조합에서 수목 활용 계획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제출하는 방법이 아닌 건축, 환경 전문가 자문을 한 뒤 제출하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추진 경과는 당초 에상보다 지지부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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