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장혜진 "연기 놓고 도망…'밀양' 복귀 후 재미로 버틴 10년"(인터뷰)

[N인터뷰] 영화 '니나내나' 미정 역 변신

[편집자주]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스1 DB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스1 DB
 대중에게 장혜진(45)이라는 이름은 칸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을 통해 알려졌다. '기생충'에서 장혜진은 투포환 선수 출신인, 입이 걸고 억척스러운 엄마 충숙 역을 맡았고, 충숙은 기존 매체에서 그려졌던 엄마의 캐릭터와 달라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처음 알려진 역시 강인한 만큼, '배우 장혜진'을 생각할 때 털털했던 충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제 장혜진을 만나보면 누구든 그가 '기생충'의 충숙과는 전혀 다른 성격임을 알게 되고, 특유의 소녀처럼 감정이 풍부하고 수다스러운 '동네 언니'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니나내나'의 홍보를 위해 뉴스1과 만난 장혜진은 "충숙보다 미정이 말이 많다. 말을 많이 하고 싶었나 보다"라며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장난스럽게 설명해 웃음을 줬다.

'니나내나'는 진주에 사는 미정 경환 재윤 삼남매에게 어느 날 오래 전 집을 떠난 엄마의 편지 한 장이 도착하고, 이들이 편지의 발신지인 파주로 함께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섹션 공식 초청작이며 '환절기' '당신의 부탁' 이동은 감독의 신작이다.
'니나내나' 스틸 컷 © 뉴스1
'니나내나' 스틸 컷 © 뉴스1

재밌는 사실은 장혜진이 이동은 감독의 친누나와 '베스트 프렌드' 사이라는 점이다. 장혜진은 영화를 만들 때 만큼은 다른 감독들과의 관계와 "똑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배우와 감독으로 만날 날을 꿈꿨던 친구의 동생이라 감회만큼은 남다르게 다가오는 듯했다. 

"감독님 누나와 소통을 많이 해요. 진짜 '베프'죠. 그 친구는 제 결혼식에 오고, 제가 친구 결혼식에도 가고, 원래 서로 결혼식을 비슷한 시기에 잡으면 상대 결혼식 안 가는 거라는데, 우리는 상관없이 갔어요. 심지어 신혼여행지도 같았어요.(웃음) 중고등학교 '베프'가 딱 2명 남았는데, 그 친구에요. 그 누나가 항상 그랬어요. '우리 동생도 잘 되고, 둘 중 하나가 잘 되면 서로 끌어주자'고. 그런데 지금 같이 영화를 하게 돼 제 친구인 감독님의 누나가 더 행복해 하고 있어요."

누나의 친구인 사실이 캐스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동은 감독은 인터뷰 및 언론배급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자신보다 주변사람들의 추천이 많아 장혜진을 캐스팅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완성된 영화('니나내나')를 두번, 세번을 봤는데 볼수록 좋아요. 따뜻해지고.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가 마음에 더 와닿으니까. 관객들은 같이 봤을 때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 같아요. 우리 형제, 우리 집 이야기와 다르지 않으니까.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소소하게 웃고, 내가 웃는 포인트는 나만 아는 거예요. 재밌는 장면에 혼자 우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각자의 경험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장혜진은 자신의 실제 모습이 충숙보다는 '니나내나'의 주인공 미정에 더 가깝다고 했다. 미정은 이혼을 하고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어린 시절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 대신 남동생들을 보살피려고 하지만, 자신의 삶도 쉽게 풀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인물이다.
'니나내나' 스틸 컷 © 뉴스1
'니나내나' 스틸 컷 © 뉴스1
"어릴 때 겪은 아픔을 갖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미정의 모습이 꼭 제 이야기 같았어요. 그렇게 아픈 걸 아프다고 티내지 못하고 괜찮은 척 살다가 일들을 터뜨리게 되는 거죠. 너무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미정의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대놓고 힘들어 하지 않고 '괜찮아' 하면서 씩씩하게 사는데도 아픔이 느껴져요."

실제 장혜진은 남동생이 있는 누나다. 그는 "내가 누나이긴 하지만 철이 없고 실수를 많이 해서 실제 남동생도 영화에서 경환(태인호 분)이 그랬던 것처럼 오빠 같이 나를 챙겨준다"고 했다.

영화 속 미정은 신내림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캐릭터다. 계속되는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지만, 누구보다 동생들을 사랑하고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엄마를 찾으려 먼저 결심을 하는 인물이다.

"미정에게 신내림은 삶의 도피처였어요. 본인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지고, 엄마도 떠나고 동생도 죽고 하는 게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이 있었던 거죠. 우리 모두 팍팍한 삶에서 종교에 많이 기대는데, 미정이 선택한 종교는 그런 쪽이고, 거기서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당을 찾아가 신내림을 해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장면이 짠했어요.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은 의지가 느껴졌죠."

미정이 방황을 해왔듯 장혜진 역시 배우로서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인 그는 중도에 연기를 포기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1998년에 단역으로 나온 영화가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리고 복귀작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었다. 역시 단역이었지만, 무려 10년만에 현장에 복귀했던 '밀양'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밀양'에서 사투리 쓰는 여배우가 필요하다고,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하셨어요. 10여년 전에 '박하사탕'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연기 안 하고 있다, 그래도 감독님(이창동)이 학교 교수님이니까 인사나 드려보라고 해서, '박하사탕' 때 오디션도 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 드리는 마음으로 갔었어요."

다시 만난 이창동 감독은 장혜진에게 다시 연기를 시작하라고 했다.

"나 연기 그만두고 애 키우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연기를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떨어뜨리시고, 지금은 붙이시고.(웃음) 감독님이 지금이랑 그때랑 달라졌다고, 그래서 연기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감독님과 대화 하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다시는 연기를 안 하겠다고 했지만 겪어보니 또 촬영 현장이 너무 좋더라고요. '밀양'을 찍고 다시 연극을 시작했어요."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후배에게 연기 수업을 다시 듣고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재밌어서 버텼어요. 조금씩, 하나씩 해나가고 있으니까 가족들도 응원을 많이 해줬고요. 어쩌다 영화나 드라마 단역이 들어오면 하고요. 그러다가 '우리들'(2015)이라는 영화를 찍게 됐고, 봉준호 감독님도 그 영화를 보게 되시고, '기생충'도 찍게 됐어요. 그래서 저에겐 '우리들'이라는 영화의 의미가 커요. 많은 것들이 있게 해주는 영화니까요."
뉴스1  DB © News1 여주연 기자
뉴스1  DB © News1 여주연 기자
달라진 마음가짐은 지금 장혜진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대 때는 (내 연기의)못하는 것만 보였어요. 잘하려고 하는 욕심이 앞서서 연기가 재미없었던 때죠. 이제는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캐릭터 분석도 하고 골머리를 앓았다면 지금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겼어요. 모르죠, 언젠가는 또 '괴로워 죽겠어' 할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다행히 감사하게도, 연기에 재미를 붙여왔던 것 같아요."

가족들은 장혜진에게 가장 힘을 주는 존재들이다. 특히 어른스러운 딸은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딸이 엄마의 활동을 보며 너무 좋아해줘요. 그렇지만 자기 얘기는 하지 말래요. 자기 얘기를 하는 순간 엄마는 배우가 아니라 엄마가 된다고. 엄마는 배우 장혜진으로 남았으면 좋겠대요.(웃음)"

"저는 원래 걱정이 많고 불안이 많은 사람이에요.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면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요. '내 마음이 이래'라고 말하면 '토닥토닥' 해줘요. 내가 잘 하고 싶어서 불안하구나. 그 불안함을 없애 나가는 건 제가 할 일이겠죠. 또 제가 지쳐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요. 한 번 도망 갔는데 두 번은 못 가겠어요? 임계치에 놓일 때쯤에 주변에 도움을 많이 요청할 것 같아요. 혼자면 안 되는 걸 이젠 알았으니까. 지금은 힘들면 손을 내밀어도 되는 걸 아니까."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