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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선거운동죄 폐지해야"…임미리가 쏘아올린 '선거법 개정' 신호탄

2017년 대법 "선거운동은 특정후보자 당락 도모 행위"
선거운동기간 제한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지적도

[편집자주]

페이스북 캡처 © 뉴스1
페이스북 캡처 © 뉴스1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고발을 취하하고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 이어 18일 이인영 원내대표가 사과했다. 하지만 일부 여당 지지자들이 고발을 예고하고 있고 공직선거법 위반이 친고죄가 아닌 만큼 검찰의 수사 가능성은 남아 있다.

법조계에선 임 교수의 칼럼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운동기간을 지나치게 엄격히 규정한 현행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후보 아닌 정당 반대는 '선거운동' 해당 안돼

일단 법조계에선 "임 교수의 칼럼이 위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사전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254조를 들어 임 교수를 고발했는데, 판례상 선거운동은 '특정선거에서 특정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가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했지, 특정후보자를 빼고 투표하자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대법원은 불법정치자금 혐의를 받는 권선택 대전시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하면서 선거운동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했다. 

당시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은 특정선거에서 특정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라면서 "이같은 목적의사가 있었다고 추단하려면 단순히 선거와의 관련성을 추측할 수 있다거나 선거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정선거에서 당락을 도모하는 행위임을 선거인이 명백히 인식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선거운동에 해당하려면 △선거의 특정 △후보자의 특정 △당선목적·낙선목적 △당선·낙선에 직접·간접적으로 필요한 행위 4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임 교수의 칼럼이 '특정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한 투표참여 권유 행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58조의2항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은 투표권유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또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가 임 교수 칼럼에 대해 선거법 위반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주장 역시 심의위가 '권고' 결정 내린 사안은 사전 선거운동 금지조항이 아닌 언론의 공정보도 의무를 정한 선거법 8조이기 때문에 별개 사안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황정근 변호사(59·사법연수원 15기)는 "임 교수 칼럼은 선거운동 요건 중 '후보자의 특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본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며 "또 민주당을 반대한다는 거지 투표를 많이 하라는 운동은 아니기 때문에 투표권유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칼럼이란 형식과 내용을 보더라도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공안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거운동 개념은 특정후보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능동적 행위여야 하는데, 임 교수 칼럼은 민주당 낙선을 위해서라기보단 학자의 입장에서 정치평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당만 빼고'란 캐치프라이즈를 내걸었다고 해서 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함부로 글도 못쓰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현직 검사도 "칼럼 하나 썼다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며 "검찰에서 고발장이 제출됐으니 수사를 하는 거겠지만 공소유지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남부지검은 공직선거법 위반은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민주당이 고발을 취하했다고 해도 일단 사건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 선거운동기간 제한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임 교수 칼럼 논란은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로 옮겨붙고 있다. 선거운동기간을 지나치게 엄격히 제한한 사전 선거운동죄가 국민의 선거에 관한 헌법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기간은 선거기간 개시일부터 선거일 전일까지로 제한하고, 이 기간 전에 법에 규정된 방법을 제외하고 선거운동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오는 4월15일 21대 총선의 경우 4월 2~14일 단 13일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사전 선거운동죄를 폐지하고 명예훼손이나 모욕, 허위사실 공표 등 다른 요소만 없다면 어떤 당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게 항상 허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거운동을 통해 유권자에게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책과 목표에 관해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 유권자는 의미 있는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해 11월 선거법 개정 촉구 토론회에서 "선거운동 기간제한 규제 폐지, 명예훼손 관련 규제의 일반법 적용, 매체 기반의 규제를 최소화하되 신문이나 방송광고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행위에 대해 정치자금법으로 규제하고 선거기간과 관계없이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한국과 같이 선거운동기간을 제외하고 전면적이고 포괄적으로 엄격하게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입법례는 일본과 필리핀밖에 없다. 미국은 4년 내내 선거운동을 한다"며 "국회가 현역 기득권 챙기기로 비칠 우려 때문에 직접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므로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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