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기자의 눈] 당신들의 교회, 우리의 예수

[편집자주]

대전 서구 한 교회 십자가 옆으로 슈퍼문이 떠오르고 있다. 2018.1.31/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대전 서구 한 교회 십자가 옆으로 슈퍼문이 떠오르고 있다. 2018.1.31/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중요한 것과 절대적인 것은 구분해야 한다. 비슷한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그냥 '매우 중요한 것'일 뿐이지, 결코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절대적인 것은 비교 대상이 없다. 그저 그 자체로 존재의 목적이 된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애초의 목적을 잊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내려가는 문제가 생긴다. 너무나도 중요한 공천을 따내느라 국민에 대한 봉사를 잊는 정치인, 너무나도 중요한 매출을 위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기업인을 우리는 종종 마주한다. 기자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기자에겐 너무나도 중요한 특종을 따내느라 취재 윤리를 어겨 자신의 존재 이유인 사회 발전 기여를 뒤로 하는 사람을 '기레기'라고 부르지 않나.

자신의 믿음을 위해 교회에서 예배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억압도 없는 자유로운 예배가 그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게 기독교의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2000년 전에 태어나지 않아 정확한 사실은 모르지만, 예수님의 높은 가르침이 고작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마다 꼭 교회로 나와 나를 섬기라'는 게 아니었다는 건 분명하다.

비(非) 기독교인인 기자가 보는 기독교는 공동체에 대한 선의, 관용, 동포애를 절대적인 가치로 삼는 집단이다. 종교적 색채를 빼고 본 예수는 모든 인류에게 박애 정신을 전파한 사회운동가로 생각된다. 모르는 사람이 길 가에 쓰러진 것을 보자 돌봐준 사마리아인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한다. 이런 기독교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공동체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지난 22일 열린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주일예배 현장. 예배당 밖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예배를 보고 있다.(유튜브 너알아tv 캡처) © 뉴스1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는 이런 선지자의 가르침을 탄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믿을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지, 특정 장소에 모이는 걸 보장하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으니 한시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예배를 해달라는 정부의 권고를, 로마에서 이단으로 몰린 기독교인들과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겪었던 탄압과 비교하는 건 너무 민망하다.

바이러스는 신을 피해가지 않는다. 이미 전국의 다수 교회에서 주말 예배로 인해 수많은 확진자들이 나왔다. 기독교인들이 사랑해야 할 우리 공동체의 수많은 이웃들은 이를 보며 불안함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최대 장로교단은 예배를 점검하는 지자체에 대해 "종교 탄압이요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내게 너무나도 중요한 예배를 보느라 죽고 다치는 치명적인 감염병이 내 이웃에게 전파된다면, 그건 예수의 가르침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논란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갈등을 빚는 것을 예수는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2020년 대한민국에 그가 다시 나타난다면, 이것은 나의 가르침이었다고 과연 말할까. 인간이 있어야 종교가 있고, 사람이 있어야 신(神)도 있다.

지난 일요일 기자는 동네에서 방역 분사기를 멘 목사와 휴대용 분무기를 든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예배 대신 아파트와 주택가를 돌며 방역 봉사활동을 3주째 하고 있다고 했다.

매주 신을 부르는 사람과 신을 외면하는 사람 중 예수님은 누가 내 뜻에 맞는다고 할까. 성경은 1도 모르는 비기독교인 기자도 알고 있는 유명한 그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너의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연관 키워드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