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광주를 사랑한, 광주가 사랑한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1주기…광주와 인연 재조명

[편집자주]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후보 캠프 제공) 2012.9.16/뉴스1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후보 캠프 제공) 2012.9.16/뉴스1

"5·18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그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가장 생각이 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민중항쟁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광주MBC와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80년대 이후에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며 "광주를 알게 될 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돼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내버려뒀던 그 사실에 대해 큰 부채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 부산가톨릭센터에서 5·18 진실을 알리는 광주비디오 관람회를 3~4일 정도 열기도 했다"며 "부산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됐다"고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문 대통령의 기억처럼 광주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별한 인연으로 닿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를 사랑한 영남 출신의 대통령이었고, 광주가 사랑한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에 나서고 광주에 주목한 계기 중 하나는 80년대 부산에서 구속된 학생들을 변론하면서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전남대 강연에서 "그 학생들한테 왜 잡혀왔냐 물어보니까 광주학살의 진상을 부산시민들에게 전파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죄목이었다"며 "그때부터 광주는 우리의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광주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각인한 건 1988년 가을 국회에서 열린 '5공비리·광주특위' 청문회였다.

젊은 초선의원 노무현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뻔뻔한 모습을 보이던 전두환 일당을 향해 빈틈없는 논리로 공격해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됐다.

전두환 일당이 불합리하고 모순된 진술을 하도록 끌고간 뒤 핵심을 찌르는 송곳같은 질문은 광주시민들의 한을 풀기에 충분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라고 주장하는 전두환을 향해, 또 여전히 그를 비호하는 세력을 향해 '전두환이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야'라며 고함을 지른 초선의원의 당돌함은 그간 울분의 세월을 보낸 광주에게 통쾌함을 안겨줬다"고 적었다.

1990년 지역갈등의 원흉으로 꼽히는 이른바 김영삼·노태우·김종필의 '3당합당' 당시 통합을 반대하며 고군분투한 것도 강렬했다.

그는 3당합당은 '호남을 고립시키는 분열의 결단', '야합'이라며 정치 인생의 길을 열어줬던 김영삼의 곁을 떠났다.

이후 14대 총선에 부산 동구에 출마해 낙마하고 16대 총선에서 지역갈등 해소와 동서통합을 위해 부산지역에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하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광주는 그런 노무현을 껴안았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광주는 영남 출신의 노무현을 선택하며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의 진원지가 됐다.

당시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해 3월16일 열린 민주당 경선 세 번째 지역인 광주에서 노 후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37.9%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선두를 달리던 이인제 후보가 31.3%로 2위, 한화갑 후보는 17.9%로 3위에 그쳤다. 정치권에선 이를 '3·16 사건'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광주에서 분 '노풍'은 국민경선의 짜릿한 드라마와 함께 '단기필마 노무현'을 16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보답을 아끼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하며 한국전력 본사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에 보냈다. 아시아문화전당, 호남KTX 착공도 전폭 지원했다. 호남 출신 장관도 전폭적으로 기용했다. 참여정부 호남 출신 장관은 30%로 역대 최고 비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을 사랑했다"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4·13총선 직전 광주를 찾아 '호남홀대론'을 해명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호남을 사랑했는가 하면 국가 정책기조를 국가균형발전으로 했다"며 "그동안 경부라인으로 발전해 모든 기업 여건이 수도권과 경상도가 유리하게 돼 있어 호남의 성장 동력을 높여주기 위해 국가 균형발전을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광주에 자생적인 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만들기 위해 단군 이래 최대 예산인 5조3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와 아시아문화전당을 추진했고 혁신도시에 공기업 중 가장 큰 한전을 이전했다"고 말했다.

또 "호남KTX 착공도 경제적타당성이 0.32로 기준인 1을 넘지 않아 모든 정부부처가 반대했고 심지어 이해찬 총리도 반대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균형발전을 봐야 하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조기착공했다"며 "이런 식으로 호남을 위해 굵직한 선물을 준 정부가 어디 있었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해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며 광주에 애정을 드러냈다.

2003년 5.18 23주기 기념식 때 학생들의 시위로 5·18묘지 후문으로 입장하기도 했으나 5년 재임기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다.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식으로 지정된 이후 재임 기간 5·18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2003년 5·18 23주기 기념식에선 "참여정부는 바로 5·18광주의 숭고한 희생이 만들어낸 정부"라고 했다.

이듬해 24주기 기념식에선 "5·18을 통해 광주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 소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25주기 때는 "우리가 세계에 손색이 없는 당당한 민주주의를 하게 된 토대에 바로 광주가 있었음을 우리 국민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고 26주기 때는 "5·18광주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화해와 통합의 역사를 이루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담양의 한 온천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무등산을 찾아 등반했다.

노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광주시민들이 광주정신이 깃든 무등산에 오를 것을 권유하자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시면 무등산에 오르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현직 중 무등산을 찾은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광주시민들은 5월19일 현직 대통령 최초로 무등산 산행을 했던 노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2011년 11월 '무등산 노무현길'을 지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에 머물면서도 광주를 찾았다. 2008년 4월20일 광주지역 문중대제 참석을 위해 광주에 와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강물처럼'이라는 여운을 담은 글귀를 남겼다. 그게 그의 마지막 광주행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1주기. 광주를 사랑한 대통령, 광주가 사랑한 대통령 노무현은 여전히 광주시민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우리가 아무리 호남호남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호남을 사랑했겠습니까. 가장 호남을 사랑하신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시지요. 그러나 김 대통령은 당신이 호남이어서 호남 챙기는데 좀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영남을 껴안아야 하니까.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당신이 영남이기 때문에 호남을 더 끌어안았습니다."(문재인 2016년 4월12일 광주 광산구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 간담회 중)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