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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부터 정해영까지…아버지의 그늘 벗어나 아들의 이름으로

[닥터J의 야구수첩] "야구인 2세 힘들다"…더 많은 박수 필요

[편집자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코치와 선수로 함께한 이종범 코치·이정후 부자. /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코치와 선수로 함께한 이종범 코치·이정후 부자. /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소재로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 국내에서 큰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이 게임을 오래 진행하다 보면 데리고 있는 장수의 아들이 수하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촉나라의 경우 유비의 아들 유선, 관우의 아들 관흥, 장비의 아들 장포가 새로운 장수로 등장하는 식이다.

39년 역사의 KBO리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스타플레이어들의 2세들이 장성해 대를 이어 프로야구 무대를 누비는 중이다. 단순히 프로야구에 적을 두고 있는 것을 넘어 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많다. 바야흐로 '야구인 2세' 전성시대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미 2세 스타들이 즐비하다. 켄 그리피 시니어-주니어, 칼 립켄 시니어-주니어가 대표적인 사례. 켄 그리피 주니어와 칼 립켄 주니어의 경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KBO리그도 그 길을 따라걷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 프로야구는 제5공화국 시절이던 1982년 출범했다. 2세 선수가 나올 수 있는 시간적 환경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이미 24년 전이던 1996년, 1호 부자 프로야구 선수가 탄생했다. 윤동균의 아들 윤준호가 대를 이어 OB(두산 전신)에 입단한 것. 그러나 윤준호는 이듬해 방출돼 LG로 이적한 뒤 1군 기록 없이 은퇴했다.

윤동균-윤준호 부자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를 이어 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선수들은 꽤 있다. SK의 주축으로 뛰고 있는 정의윤 역시 1984년 롯데의 1차지명을 받은 정인교 전 롯데 코치의 아들이다. SK와 넥센(현 키움)을 거쳐 은퇴한 박윤도 박종훈 전 LG 감독·한화 단장의 아들로 잠시 화제를 모았다.

올 시즌 야구인 2세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버지들의 이름값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기량 때문이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키움)가 대표주자. 여기에 유원상(KT)·유민상(KIA) 형제, 박세혁(두산), 강진성(NC), 이성곤(삼성), 정해영(KIA) 등이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한 이정후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 전 LG 코치의 아들이다. 이제는 이종범 전 코치가 '이정후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이정후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올 시즌엔 장타력까지 강화해 9홈런으로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도 눈앞이다.

'삼부자 야구 패밀리' KIA 타이거즈 유민상(왼쪽부터),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 KT 위즈 유원상.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삼부자 야구 패밀리' KIA 타이거즈 유민상(왼쪽부터),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 KT 위즈 유원상.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유원상과 유민상은 유승안 전 경찰청 감독의 아들들이다. 형 유원상은 올 시즌 KT로 팀을 옮겨 불펜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고 있으며, 동생 유민상은 KIA의 주전 1루수 자리를 꿰차 대기만성의 사례가 되고 있다. 둘은 25년만에 '형제 투타 대결' 기록도 남겼다.

아버지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도 있다. 지난해 처음 두산의 주전 포수 역할을 맡아 팀을 통합우승으로 이끈 박세혁이 그 주인공. 박세혁의 아버지는 박철우 두산 2군 감독. 1군과 2군으로 떨어져 있지만, 박세혁은 아버지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올 시즌에도 팀의 안방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강광회 심판위원의 아들 강진성, 이순철 SBS해설위원의 아들 이성곤은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강진성은 2012년 NC에 입단한 뒤 주로 2군에 머물다 올 시즌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2014년 두산 입단후 2차 드래프트로 2018년부터 삼성에서 뛰고 있는 이성곤도 프로 데뷔 첫 홈런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신인 중에도 '야구인 2세 돌풍'에 합류한 선수가 있다. 정회열 전 KIA 수석코치의 아들 정해영이다. 올 시즌 KIA의 1차지명 고졸 루키인 정해영은 지난 1일 한화전에서 역대 21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승리라는 기록을 세운 뒤 10일 키움전에서 연장전 호투를 펼치며 시즌 2승째를 올렸다.

정해영과 마찬가지로 올 시즌 1차지명 고졸 신인인 신지후(한화)도 야구인 2세다. 신지후의 아버지는 신경현 전 한화 코치. 신지후는 부상으로 아직 프로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다. 신경현 전 코치와 배터리를 이뤘던 정민철 한화 단장은, 현역 시절 마운드에서 신 코치의 2루 송구에 옆구리를 강타 당했던 사건을 언급하자 "(신)지후만 잘 큰다면 다 용서할 수 있다"며 여전한 입담과 함께 그를 향한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버지로부터 좋은 DNA를 물려받은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잘하든 못하든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게 되며 원치 않는 아버지와 비교도 이겨내야 한다. "야구인 2세는 정말 힘들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박세혁의 고백은 뜻하는 바가 크다. KBO리그에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주니어들. 더 많은 응원과 박수가 그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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