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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걸테크 열리나③]"세계는 3년 새 654% 급성장…韓 제자리걸음"

[편집자주]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가 전문지식 상담 플랫폼 '지식인 엑스퍼트'를 내놓으면서 ICT를 활용해 법률문제를 해결해주는 '리걸테크'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존에 '알음알음' 방식으로 사무장을 통해 변호사를 소개받던 시대에서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리걸테크를 둘러싼 법적 논란의 쟁점과 전망을 짚어본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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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시대, ICT 기술은 산업 전반에 접목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핀테크' 산업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구분되던 법률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과 법률이 융합한 '리걸테크'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법·규제 문제와 제한적인 데이터 공개를 이유로 다소 더딘 성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으로 대표되는 해외 리걸테크 시장은 빠른 디지털 전환을 통해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법조인 돕는 서비스'로 성장한 리걸테크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독일 부세리우스 로스쿨이 지난 2018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리걸테크 서비스는 크게 △디지털화를 도와주는 기술(Enabler) △지원 기술(Support processes solution) △변호사를 도와주는 기술(Substantive Law solution)로 구분된다.

디지털화를 돕는 기술이란 종이 문서로 존재하던 데이터를 데이터화 하거나 서로 다른 시스템에 저장된 데이터를 통합해주는 기술 등을 의미한다. 최소 인프라 구축을 위한 기본 기술로 볼 수 있다.

지원기술은 변호사, 검사 등의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는 기술을 뜻한다. 판례 관리시스템과 로펌 회사에 맞춤화된 고객관리 시스템 등이 여기에 속한다. 변호사를 도와주는 기술은 반복업무를 자동화하거나 계약서 초고 등을 대신 작성해주는 기술이다.

즉 리걸테크는 의뢰인의 변호사 검색, 상담 신청, 법조인의 법령 검색, 업무 처리 등을 도와주는 기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미국 리걸테크 기업 블랙스톤디스커버리는 AI 기반 법률검색 서비스 'e디스커버리'를 개발해 변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의뢰인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낳아 주목을 받았다.

e디스커버리는 수백만건의 법률 문서를 단시간에 분석하는 서비스다. 지난 2011년 150만건의 소송문서를 10만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분석하면서 유명해졌다. 인간이 같은 업무를 진행한다면 수개월에 거쳐 진행될 일이었다.

◇"빅데이터 기반으로 승소 예측까지"…AI가 키운 리걸테크 시장

그러나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리걸테크에 AI가 본격 접목되기 시작한다. 일각에서는 AI가 접목된 리걸테크 산업이 변호사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전망도 내놨다. AI가 법과 접목되면서 계약서 자동작성, 증거수집, 승소·패소 판결 예측, 손해배상액 예측 등이 가능해졌다.

미국 리걸테크 기업 렉스마키나(Lex Machina)는 데이터와 자체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판사, 변호사, 소송 관계자에 대한 데이터 세트를 분석·제공한다. 변호사는 이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상대측과 판사의 행동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회사는 이베이, 페이스북 등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한 상태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장 가능성도 커지며 리걸테크 시장의 글로벌 투자금액도 덩달아 상승세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회사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리걸테크 시장 투자금액은 지난 2015년 2억2200만달러(약 2672억8800만원)에서 2018년 16억6300만달러(약 2조22억원)까지 성장했다. 불과 3년 새 654% 커진 것.

AI와 데이터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에 리걸테크의 핵심요소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여기서 데이터는 단순한 법이 아닌 판결 내용과 결과, 참여자, 판사 정보 등을 포함한다.

이에 하버드 법학도서관은 라벨(Ravel)이라는 스타트업과 함께 법률 데이터 수집을 위한 '케이스로 엑세스 프로젝트'(Caselaw Access Project)를 진행한다. 하버드 법학도서관과 라벨은 도서관에 소장된 법학서적(모든 미국 주·연방 판례 포함)4만원을 스캔하고 디지털화했다.

디지털화해야 하는 서류는 약 4000만 페이지에 달했는데 방대한 데이터 양 때문에 디지털화 과정에만 5년이 소요됐다고 전해진다. 라벨은 이 데이터에서 텍스트를 뽑아내 검색 환경을 구축했고, 여기에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자료도 추가했다.

라벨은 이 데이터를 유료로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현재 미국 내 400개가 넘는 로펌의 변호사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르고 설득력 있는 변호를 준비하고 있다.

라벨이 제공하는 '검색 시각화' 서비스를 통해 변호사들은 자신의 사건과 비슷한 케이스를 간편하고 신속하게 찾아볼 수 있다. (라벨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라벨이 제공하는 '검색 시각화' 서비스를 통해 변호사들은 자신의 사건과 비슷한 케이스를 간편하고 신속하게 찾아볼 수 있다. (라벨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IT강국'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내에서도 리걸테크 시장이 태동하고 있다. 소송관련 정보 비대칭과 낮은 접근성에 주목한 온라인 법률상담서비스 '로톡'과 '헬프미' 등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도 전문지식 상담 플랫폼 '지식인 엑스퍼트'를 통해 변호사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업계는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견이다. 그 원인으로는 데이터의 부족과 법령·규제의 문제가 대두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리걸테크의 핵심은 빅데이터 기반으로 지능정보기술을 융합하는 것이므로 판례가 많을수록 리걸테크의 인공지능 추론 결과에 정확도가 높아진다"며 "국내 법원은 판례를 제한적으로 공개해 높은 정확도의 리걸테크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변호사법의 동업금지 규정도 걸림돌이 된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과 변호사의 동업을 금지하고 있어 민간기업에서 변호사와 공동으로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해외에서는 빠르게 법률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 리걸테크를 활용한 사례가 다수이나 국내 리걸테크의 기술 발전 단계는 검색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변호사법에 의한 장벽이 존재하며, 데이터부족으로 정확도를 높이기 어려운 상태고 형사사건에서 활용하기에는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므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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