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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나흘 걸린 임대차법…'거여' 만든 국민은 첫 법안이 두렵다

전국민에 영향 미치는 민생법안…야당도, 국민 여론도 담지 못하고 강행 처리
20대 국회 '초고속 처리' 법안들 현장서 작동 못해…비효율 표본

[편집자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가결된 후 의원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0.7.3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가결된 후 의원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0.7.3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논의를 시작한 지 불과 사흘만에 상임위원회 의결과 본회의 표결 처리가 이뤄졌다. 정부는 그 다음날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열어 즉각 공포함으로써 전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효력이 발생했다. 법안 상정 나흘만의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의 불참 속에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정부가 31일 공포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이야기다. 임차인에게 총 4년(2+2년)의 계약기간을 보장하고, 갱신시 임대료 인상률을 5% 내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전월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이 법을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상정한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당시 법사위 회의에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주혜 미래통합당 의원은 "개정안에 소급적용 규정이 담겨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며 "여러 국민들이 피해보지 않게 심층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지난달 29일 다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재차 제동을 걸었다. 통상적인 절차대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구성해 법안을 차분히 논의할 시간을 요구했지만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전체회의 찬반토론으로 법안 심사를 마무리했다. 그리곤 윤후덕·박주민·백혜련·박홍근 민주당 의원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묶은 법사위 대안을 가결했다. 야당 의원들은 법안을 읽어볼 시간도 없었다며 항의했다. 

법안은 다음날인 3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윤희숙 통합당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5분발언에서 "임대소득만으로 살아가는 고령 임대인을 어떻게 배려할지, 수십억 원짜리 전세에 사는 부자 임차인도 같은 방식으로 보호할지 등을 점검했어야 한다"며 법안 처리 과정서 숙의와 토론 부재를 지적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2020.7.3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2020.7.3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은 '초안'의 성격이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기존 법률과 충돌할 때도 있고, 위헌 소지가 있는 경우도 있다. 법이 작동하는 실생활과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본회의 상정 전 소관 상임위에서 수차례 검토·심의 과정과 많은 경우 공청회까지 열어 요모조모를 따지는 이유다. 정부부처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단체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법안의 완성도를 높인다.

동물국회라는 오명이 남은 20대 국회에서도 이번 임대차법처럼 초고속 처리된 법안이 몇 있다. 모두가 '시급성'을 이유로 절차를 생략했다. 일부는 법안 내용이 간단하고 전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속성 처리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 발의 후 일주일이 채 안 된 사이 통과된 법안은 모두 3개다. 공교롭게 모두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이다.

그 중 최단기간 처리된 법안은 2016년에 나온 '최순실 특검법'이다. 우상호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대표 발의로 여야 의원 209명이 서명한 이 법안은 그해 11월 15일 발의돼 이튿날인 11월 16일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상정됐고, 그 다음날인 17일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발의 후 이틀, 상임위 상정 하루만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여야가 합의하에 처리했다.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제를 도입한 것으로 범죄 수사의 특성상 긴급성이 있었다. 일반 국민의 삶에 직접 미치는 영향도 적었다. 당시 법사위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 이틀만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나마 법안 공포는 11월 22일 이뤄져 법안 상정 후 6일이 걸려 이번 임대차법보다는 느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민생법안이 쏟아졌던 올해 4월에도 2개의 법안이 발의 후 일주일 안에 처리됐다.

전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3개월 이내 수령하지 않으면 기부금으로 자동 편입하는 내용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금 특별법(전혜숙 의원 대표발의)은 올해 4월 27일 발의·상정돼 이틀 뒤인 29일 행안위·법사위·본회의를 차례로 통과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산업은행법 개정안(이학영 의원 대표발의)은 올해 4월 23일 발의된 뒤 28일 정무위 상정·의결을 거쳐 29일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투입 방안에 여야는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민생법안이라는 성격을 명분으로 일사천리 처리됐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정이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을 거론하며 신속하게 처리한 재난지원금 기부금 특별법은 공무원들의 '반강제적 기부' 논란만 일으킨 채 7월까지 정부 예상치(2조8000억원)의 1%에 불과한 288억원의 기부금을 모으는 데 그쳤다.

산은법 개정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항공·해운 등 기간산업의 지원을 위해 통과됐지만 정작 기안기금을 신청한 기업은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김희곤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안기금 지원요건이 까다롭고 취지에 맞지 않게 대기업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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