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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 이천·안성 초토화…농장주·외국인일꾼 '망연자실'(종합)

[르포]노부부 다친 발로 물 퍼내기만…"대피하래도 요지부동"
호우로 양계장 무너져 1명 사망…"착실한 사람이었는데"

[편집자주]

4일 오후 경기 이천 율면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대피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뉴스1/이밝음 기자
4일 오후 경기 이천 율면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대피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뉴스1/이밝음 기자

4일 오후 경기도 이천 율면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대피소. 전체 입소자 72명 중 외국인이 50명이다. 인근 율면고교 이재민대피소는 입소자 30명이 모두 외국인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비살(33)도 수해를 입고 지난 2일에 율면 실내체육관에 왔다. 이들이 머무는 4인용 연두색 텐트의 문 옆에는 소속 농장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같은 농장 외국인 노동자 16명도 율면 실내체육관 이재민대피소에 함께 들어왔다. 비살은 "일요일 저녁부터 하우스 물이 다 들어와요, 안에 비가 안에 엄청 많이 와요. 사장님이 가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했다.

8월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이천에는 총 239㎜의 비가 내렸다. 총 140명이 이재민이 생겼다. 이천을 비롯한 경기도 곳곳의 도로, 철도, 저수지가 파손됐다.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날"이었다.

비살은 "우리 농장엔 일 없다. 야채가 다 죽었다"며 "사장님 돈 없어, 우리 돈 없어"라고 했다. 비 피해로 사장이 돈을 벌지 못했고 자신도 월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농장주들도 율면 실내체육관에 함께 머물렀다. 일꾼 20명을 고용한 농장주 김모씨(50대)는 "당장 10일 날 지난달 일한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어떻게 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4일 오전 경기도 이천 율면 산양리의 산양저수지 인근의 수해 현장. © 뉴스1/원태성 기자
4일 오전 경기도 이천 율면 산양리의 산양저수지 인근의 수해 현장. © 뉴스1/원태성 기자

같은 시각 경기도 이천 산양리에는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비가 내릴 때는 억수처럼 쏟아졌다가도 금방 다시 해가 났다.

지난 2일 산양저수지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제방부터 저수지 하류까지 토사물이 범람해 있었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소방대원, 경찰, 지역 주민들은 포크레인과 삽으로 쌓인 흙을 퍼내고 있었다.

무너진 닭장 주위로 닭과 오리가 활보했다. 제방 주변에 사는 80대 노부부는 굽은 허리로 집에 가득 찬 물을 퍼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대피를 권유했지만 듣질 않았다.

그들의 발에는 멍이 들고 피가 나 있었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물어도 할머니는 "지금 그게 중요한가,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다"며 분주히 움직일 뿐이었다.

복구를 돕던 새마을운동 이천지부 회장 김승동씨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계속 대피하라 말하지만 저분들이 꼼짝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오면 저것도 무너질 텐데 (노부부가) 너무 걱정된다"며 초조해했다.

율면 의용소방대의 임의중 대원은 피해 복구를 도우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철거 자체가 오래 걸리고 힘들다"면서도 "우리라도 이렇게 나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주민들은 피해 복구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진(65) 산양1리 이장은 "아직까지 나온 대책이 없다"면서도 "들리는 말로는 재난지역 선포를 한다던데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서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양계장이 무너져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졌다. 2020.8.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2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서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양계장이 무너져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졌다. 2020.8.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인근 경기도 안성도 비 피해를 크게 입었다. 안성에는 1일부터 4일 오전 5시까지 총 401㎜의 비가 쏟아졌다. 이재민은 총 123명이 발생했다. 특히 일죽면에는 2일 오전 7시부터 1시간 사이에 104㎜의 호우가 들이닥쳤다.

일죽면 한 양계장의 3개동 가운데 2개동은 무너져 내렸다. 나머지 1곳만 간신히 형체를 알아볼 정도였다. 양계장 입구에는 붉은색으로 '방역 출입금지'라고 적힌 차단 바가 설치됐다.

지난 주말 집중된 호우로 일죽면 양계장 내 조립식 패널건물이 붕괴됐다. 건물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이곳 양계장 운영자 A씨(58)가 끝내 숨을 거뒀다.

황순석씨(82)는 고인이 된 A씨를 두고 "착실한 사람이었다"고 떠올렸다. 목엔 붉은색 수건을 두른 황씨는 양계장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죽면 농장주 원재훈씨(가명·50대)는 "앞으로 복구 작업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아직 피해 보상 액수도 산정이 안 됐다"고 말했다.

원씨의 돼지 농장 입구에는 토사물이 가득했다. 그의 돼지 농가 14개동 가운데 위쪽에 자리 잡은 4개 동은 토사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가 관리한 돼지 7000마리 중 400마리는 죽거나 사라졌다.

인근 죽산면 수재민 백금미씨(59)는 "신랑이 죽는다고 나오라고 해서 휴대폰만 들고나왔다"며 집에 물이 가득 들어차던 그 순간을 회상했다.

대피소로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와보니 허리까지 물이 차 있었다고 했다. 백씨는 "발이 닿는 곳이 보이지 않았는데 만일 맨홀 뚜껑이라도 열려있었으면 빠져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산면 주민 윤모씨(60대)의 가정에는 쏟아지는 비가 '트라우마'로 남았다. 윤씨는 자녀가 "빗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고 했다. 윤씨의 남편이 6개월 전에 구입한 차량은 수해를 입어 폐차됐다.

윤씨는 "나무가 집을 뚫고 지나갔다"며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시에서 제대로 보상해줄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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