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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한국인과 함께해온 '호랑이'가 의미하는 것

코리아나미술관 '호랑이는 살아있다'展…12월19일까지

[편집자주]

제시카 세갈 '낯선 친밀감'.(2채널 비디오 중 Tiger Touch 파트,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42초, 2018)© 뉴스1 이기림 기자
제시카 세갈 '낯선 친밀감'.(2채널 비디오 중 Tiger Touch 파트,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42초, 2018)© 뉴스1 이기림 기자

한국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는 곰과 함께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간 동굴에서 지내는 호랑이가 나온다. 곶감이 자신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착각해 도망치는 '범보다 무서운 곶감' 등으로 불리는 설화에서도 호랑이가 나온다. 이처럼 호랑이를 다룬 이야기는 오랜 기간 다양하게 전해져왔다.

한때는 호랑이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인 1988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랑이를 캐릭터화한 호돌이였고, 한반도 지도는 호랑이에 빗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도 호랑이인 수호랑이었다.

무섭지만 용맹하고, 어딘가 멍청한 모습에 귀여움까지 겸비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1위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돼오고 있다. 이런 '호랑이'를 주제로 한 이야기 대신, 미술로 표현한 전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호랑이무늬 가마덮개'.(사직(絲織), 175x121㎝, 20세기,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소장)© 뉴스1 이기림 기자
'호랑이무늬 가마덮개'.(사직(絲織), 175x121㎝, 20세기,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소장)© 뉴스1 이기림 기자
이번 전시의 제목은 '호랑이는 살아있다'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무자비한 사냥으로 인해 호랑이는 현재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동물이 됐다. 그런데도 우리는 호랑이를 친근하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풍습과 문화, 정서에 깊게 녹아들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여전히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나 만화, 영화, 캐릭터 등이 나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과거 결혼하고 신부가 타고가는 가마의 지붕을 덮는 '호랑이무늬 가마덮개'와 호랑이발톱을 활용해 만든 노리개 등 조상들의 유물을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의 용맹함과 날렵함이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에 어떤 용품의 재료로 호랑이 일부를 사용하거나, 문양을 넣었다. 이같은 유물은 이런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들이다.

운보 김기창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 (왼쪽) 등 호랑이 관련 미술작품들.© 뉴스1 이기림 기자
운보 김기창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 (왼쪽) 등 호랑이 관련 미술작품들.© 뉴스1 이기림 기자
또한 민족적 상징이자 신통력 있는 영물로 취급하면서도, 해학적이면서 친근한 모습으로 등장시켜온 한국 미술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됐다. 조선 후기 유행한 민화에 이처럼 그려진 호랑이에 대해 민화연구가 조자용은 "가장 무서운 것을 가장 웃기는 예술로 표현할 수 있었던" 한국 미술의 독창성을 언급한다.

이런 모습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운보 김기창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석판화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을 보면,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과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귀여운 얼굴에 무서움 대신 친근함을 느낀다. 민중미술 선구자 오윤의 목판화 '무호도'도 춤추는 호랑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한'과 '신명'을 떠올릴 수 있다.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특히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호랑이는 살아있다'를 통해 역사적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반만년 동안 굳건하게 산야를 누비며 생존해 온 호랑이의 기상과 강인한 생명력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외국에서 바라본 호랑이의 모습도 소개된다. 영국 작가 필립 워널은 다큐멘터리 '할렘의 밍'을 통해 3년간 할렘의 한 아파트에서 벵골호랑이, 악어와 동거한 앙투완 예이츠의 사건을 보여준다.

구글 AR호랑이를 스마트폰을 통해 전시장에 구현한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구글 AR호랑이를 스마트폰을 통해 전시장에 구현한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또한 미국 작가 제시카 세갈은 수중에서 호랑이와 마주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낸다. 이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고,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잘못을 뉘우치게 한다.

이외에도 미술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보전기관인 세계자연기금(WWF)과 협력해 WWF의 활동과 호랑이의 생태에 관해 더 알아볼 수 있는 WWF존이 마련됐다.

코리아나미술관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심해졌는데, 악한 기운과 창궐하는 전염병을 없애주는 호랑이가 이를 막아줬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과 함께 전시를 준비했다"며 "또한 호랑이가 현대작가들에게 어떤 문맥으로 쓰이는지도 볼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월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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