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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선택 끝내자]④박지선·설리, 새해엔 송유정…유명인 죽음에 잇따르는 극단선택

연예인 등 일체감에 '베르테르 효과' 상승
호주에는 전담 기구…우리도 관심 절실

[편집자주] 모든 1등이 영예로운 건 아니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자살은 '막는 것' 밖에 대책이 없다. 2019년 극단 선택으로 1만3799명이 숨졌다. 하루 평균 37.7명이다. <뉴스1>은 자살시도자나 충동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흔적을 추적하고 유가족·상담사·복지사·학계 전문가 등을 취재해 관련 사례를 분석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 무엇인지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지난해 11월 극단 선택을 한 개그우먼 박지선씨와 어머니의 빈소가 이대목동병원에 차려져 있다.  2020.11.2/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1월 극단 선택을 한 개그우먼 박지선씨와 어머니의 빈소가 이대목동병원에 차려져 있다.  2020.11.2/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함께 살자."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개그맨 고(故) 박지선씨는 한 종합편성채널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동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박씨가 동료들과 경기도 외곽을 다녀오던 중 차 안에서 "나중에 나이먹고 한 건물에서 함께 살자"고 했고 이에 동승한 동료가 "결혼 안 할거냐"고 받아쳐 일행이 함박웃음을 지었다는 것이다. 

평소 주변을 잘 챙긴데다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는 개그로 '건강한 웃음'을 선사한 박씨 사망 소식은 선후배 예능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충격이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그를 본 적 없는 이들도 빈소를 찾았다.

세상에 좋은 죽음이 어디있을까마는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먹고산 박씨의 사망 소식은 일반인의 우울로 넓게 퍼져나갔다. 

SNS엔 추모 메시지가 가득했다. 예능 프로그램 녹화에서 박씨를 본 적이 있다는 30대 이모씨는 "사촌언니를 갑자기 잃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씨에게 가볍게 찾아온 우울감은 의외로 오래 갔다. 이씨는 "2주쯤 그런 '블루'에 휩싸이고서야 보통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주변에도 저처럼 '멍한 기분'을 느꼈다는 이들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씨에 앞서서도 유명인의 극단 선택이 있었고 그때마다 팬들은 우울감에 빠졌다. 지난해 9월에는 배우 오인혜씨가 유명을 달리했고 앞서 2019년엔 f(x)(에프엑스) 출신 설리(본명 최진리씨),아이돌 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씨가 젊은 나이에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올해도 1월 23일과 25일 배우 송유정씨와 힙합 음악가 아이언(정헌철)이 각각 극단 선택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 News1 DB
© News1 DB

이들 유명인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깊은 상처를 내고 결국 사람들의 모방 자살로 이어진다는 가설은 사실일까. 최근의 연구 결과나 전문가들의 관찰을 보면 일반인이 그들의 뒤를 따라 극단 선택을 하는 모방자살 즉 베르테르 효과가 실재하는 것 같다. 

전홍진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국내 유명인의 극단 선택에 대한 베르테르 효과를 얼마 전 학술적으로 증명했다. 전 교수 팀은 유명인이 자살하면 1개월 안에 일반인이 뒤따라 죽는 비율이 평소보다 25.9%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관성은 같은 유명인이라도 연예인이나 가수의 죽음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일반인이 그들의 연기나 음악을 보며 친밀감을 보이다 결국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전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심지어 자살의 방법까지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김종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논문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연예인을 중심으로)'에서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의 극단 선택 직후 일반인의 극단 선택이 2.5배 늘었다"며 "연예인의 극단 선택은 광범위한 사회적 파급력을 보인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설리와 구하라씨가 숨지고 난 지난해 10~11월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했다. 복지부도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르테르 효과가 여성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남성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종현(김종현씨)이 2017년 극단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도 연예계와 팬덤, 일반인 사이에 깊은 우울감이 자리잡은 바 있다. 종현의 발인 현장에서 남성팬들이 무릎꿇고 흐느끼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이 "연예인 자살률과 일반인 사이에 베르테르 효과가 일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백 센터장은 베르테르 효과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타까운 전망이다.

그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 자살예방백서'에 경찰청이 작성한 '2018년 동기별 자살 비율'을 들어 "베르테르의 효과 때문이라고는 해도 구체적 동기는 다양할 수 있지만 정신적 문제가 가장 주효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자살 비율 중 '정신적·정신과적 문제' 항목이 31.6%(4171건)로 가장 많았다. 특히 10~30대 극단 선택의 이유로 정신적 어려움이 가장 많이 파악되면서 베르테르 효과의 안타까움이 가중됐다.

2019년 11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하라씨 빈소에서 관계자가 조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2019.11.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2019년 11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하라씨 빈소에서 관계자가 조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2019.11.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베르테르 효과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김 교수는 "유명인이 숨졌을 때 주변인을 비롯한 가족이나 대중이 겪을 사회심리적 영향을 줄일 적절한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다"며 전담 기구나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위기 개입과 치료법 개발이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살 보도에 대한 논의나 대응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안순태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논문 '자살예방을 위한 자살보도'에서 호주의 예를 들었다. 

호주에는 2000년 정부 산하기관 마인드프레임국가미디어이니셔티브가 설립돼 대중 매체 자살 관련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상담교육한다. 

안 교수는 "(이 기관은) 관련 보도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파급을 미디어 종사자 및 관련 대학생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데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극단 선택 1위 국가인 한국에는 관련 독립 기관이 없어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국가적 대응을 촉구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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