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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설명도 사과도 없는 靑…국민에 대한 예의 아니다

[편집자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2020.12.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2020.12.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집권 5년차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이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른바 '항명 파동'을 겪었다.

우여곡절 속에 신 수석이 지난 22일 자신의 거취를 문 대통령에게 일임하면서 이번 항명 파동은 일단락됐지만, 임기 1년2개월여를 남긴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이번 사의 파동 과정에서 청와대는 현재까지 제대로 된 설명은 물론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혼선을 준 데 대한 사과도 없다. 심지어 이번 사태를 감추거나 축소하려는 인상을 준 대목에선 취임 초 ‘투명한 청와대’를 강조해 왔던 문재인 정부의 기조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이달 초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 차례 만나 협의했다.

당시 윤 총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자신의 참모 그룹인 대검찰청 부장들의 교체,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의 일선 복귀 등을 요구했지만, 박 장관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신 수석은 박 장관과 윤 총장간 이견을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박 장관은 신 수석과 조율을 채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에 문 대통령에 대한 보고 및 재가를 거쳐 일요일이었던 지난 7일 고위간부 인사안을 발표했다. '신현수 패싱'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법연수원 7기수 후배인 박 장관에게 '패싱'을 당하며 자존심을 구긴 신 수석은 문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했고, 그 때마다 문 대통령은 만류했다고 한다.  

당초 청와대는 이런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다. 인사 등 내부 의사결정 과정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속하는 만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설 연휴 직후인 지난 16일 언론을 통해 신 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이 보도됐고 여론의 관심이 쏠리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출입기자들과 만나 검찰 고위간부 인사안을 둘러싼 갈등, 신 수석의 사의표명과 문 대통령의 사의 반려 등의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박 장관이 신 수석을 배제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문 대통령에게 보고 및 재가를 거쳤는지, 문 대통령은 해당 인사안을 재가하면서 신 수석과 조율이 끝나지 않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 각종 의문들에 대해선 "청와대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신 수석과 이광철 민정비서관간 갈등설을 토대로 한 이 비서관의 고위간부 인사 재가 과정 개입 의혹, 검찰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격노한 문 대통령의 인사 재가설 등 각종 억측과 추측에 기초한 보도들이 흘러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2.22/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2.22/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이런 상황은 신 수석이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휴가를 떠났다가 지난 22일 출근해 ‘거취 일임’으로 이번 파동이 일단락되는 과정에서도 되풀이됐다.

신 수석이 휴가를 떠난 이후 주변 지인 등의 전언을 통해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인사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신 수석이 문 대통령에게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건의했는데 문 대통령이 이를 묵살하고 인사안을 사후 승인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자, 그제야 청와대는 '사실 무근'이라며 추측 보도 자제를 당부했다.

신 수석이 지난 22일 복귀해 '거취 일임'을 하면서 이번 파동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신 수석이 사의를 철회한 것인지, 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등에 대해 청와대는 일절 언급을 삼갔다. 그나마 신 수석이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건의한 사실이 없다는 것만 확인해주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청와대가 신 수석 사의 파동이 '정리됐다'고 설명해도 언론과 국민들은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신 수석의 사의 파동에 대해 최대한 언급을 자제한 것은 이번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자칫 이번 사태를 청와대가 축소·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사안은 청와대 내부,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법무부장관과 민정수석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 상황이 외부로 노출된 만큼 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었어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이번 사안이 외교와 국방 등 국가안보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도 아니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의문을 갖는 지점들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내부 불협화음을 대놓고 설명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오는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데다 여전히 청와대 등 여권이 '윤석열 검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 상황으로 인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했던 데 대한 청와대의 입장 표명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과거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1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주자 시절 당시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김영한 민정수석이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갈등을 빚으며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하자 "민정수석의 항명 사표라는 태풍이 국가의 기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대통령 비서실 기강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들 앞에서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 전 실장은 2017년 5월10일 임명 첫날 기자들에게 "청와대 비서실이라고 하면 비밀이 많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투명'과 '소통'이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비서실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24시간까지 공개하겠다던 '투명한 청와대'는 임 전 실장만의 생각이었을까. 

이번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도, 사과도 없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청와대가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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