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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자의 동행] 시골 컨테이너에 개 80마리가?…해남 땅끝마을에서 생긴 일

개체수 계속 증가…"구조도 능력·책임감 있어야"
동물등록 필수, 중성화 수술 등 개체수 조절 필요

[편집자주]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명 시대. 전국 각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려동물 관련 행사가 열립니다. 꼭 가보고 싶은 행사인데 가기 힘든 상황이 돼서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행사들을 '최기자'가 대신 가서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또 동물 구조 현장이나 보호소 봉사활동 등 '생명'과 관련된 현장은 어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동행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전남 해남군 모처에 살고 있는 A씨가 키우는 개. 컨테이너 안에 살아 관리를 잘 받지 못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전남 해남군 모처에 살고 있는 A씨가 키우는 개. 컨테이너 안에 살아 관리를 잘 받지 못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어르신, 강아지들 개체수 조절할 수 있게 중성화 지원해 드릴게요. 오늘 이후로 강아지 또 데려오시거나 번식하게 놔두시면 안 돼요. 지금처럼 계속 늘어나면 저희가 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이상성 한국반려동물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지난 20일 땅끝마을로 유명한 전남 해남군에서 만난 60대 남성 A씨에게 이같이 호소했다.

이 국장은 손에 한장의 각서를 들고 있었다. '협조사항 및 이행동의서'라고 적힌 이 종이에는 △유기동물을 직접 구조해서 개체 수를 늘리지 않는다 △번식으로 개체수를 늘리지 않는다 △입양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센터에 알린다 △재활 교육, 동물 행동 교육을 받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씨는 "개체수를 절대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각서에 서명했다. 그는 민가에서 좀 떨어진 농지에 비닐하우스 1동과 컨테이너 2동을 설치하고 80여 마리의 개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혹자는 그를 애니멀 호더(동물을 병적으로 수집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전남 해남군에서 개 80여마리와 함께 사는 A씨의 거처 전경. © 뉴스1 최서윤 기자
전남 해남군에서 개 80여마리와 함께 사는 A씨의 거처 전경. © 뉴스1 최서윤 기자

◇ 개 좋아해서 키우기 시작, 어느새 80여 마리

A씨는 어렸을 때부터 개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에 애견 사업을 하기 위해 20여 마리 개들을 데리고 있었다. 그러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상황이 어렵게 됐지만 개들을 당장 다른 곳에 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개들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암수 분리나 중성화 수술 등 관리는 하지 않았다. 결국 개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A씨의 거처에 버려지는 개들도 생겨났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방견, 放犬)들까지 구조하면서 어느새 80여 마리가 됐다.

개들 중에는 생후 2~3개월 정도로 보이는 새끼 강아지들도 여러 마리 있었다. 새끼들은 목줄을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어려서 먼곳까지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바로 옆은 도로였다. 언젠가 사고가 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개들이 많다 보니 건강관리는 꿈도 못꿨다. 몇몇 개들은 배에 커다란 종양도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이 나빠 보였다. 청소도 거의 못해 환경은 비위생적이었다. 곳곳은 개들의 똥밭이었다. 이 때문에 냄새 제거에 도움이 되라고 임시방편으로 유채꽃도 심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도 돌보기 힘들었던 그는 외부에 손을 내밀게 됐다. A씨를 찾아온 반려동물복지센터 관계자들은 그동안 관리가 되지 않던 개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었다. 그리고 이름, 몸무게, 나이 등을 파악해 개체 카드를 작성했다. 수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중성화 수술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또 입양이 가능한 개들은 최대한 안정적인 가정에 보내기 위한 조치였다.

개들은 A씨 외 다른 사람들을 경계했다. 새끼 때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으르렁 대며 멀어졌다. 소형견 중에는 입질을 하는 개도 있었다. A씨가 이름을 부르며 한 마리씩 붙잡아 겨우 몸무게를 재고 사진을 찍었다.  

개체 파악을 위해 컨테이너에 들어갈 때는 A씨와 함께 1~2명만 들어가서 조용히 처리했다. 개들이 낯선 사람을 보면 흥분할 수 있어서였다. 특히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가 있을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이런 개들의 습성을 공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들어가서 큰소리를 내면 개들끼리 싸움이 나서 다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날 동행한 진도투데이 기자 등은 밖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한국반려동물복지센터 관계자들이 전남 해남군 모처에 있는 개 80여 마리의 개체 파악을 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한국반려동물복지센터 관계자들이 전남 해남군 모처에 있는 개 80여 마리의 개체 파악을 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개들이 흥분할까봐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개들을 보고 있는 박은비 진도투데이 기자 © 뉴스1 최서윤 기자
개들이 흥분할까봐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개들을 보고 있는 박은비 진도투데이 기자 © 뉴스1 최서윤 기자

◇ "동정 아닌 사랑으로…구조도 책임감 필요"

A씨가 데리고 있는 상당수의 개들은 지역에서 떠돌아다니던 개들이었다. 시골개라고도 불리는 방견들이다. 몇 마리 개들은 묶어둔 상태였다. 돌아다니다 임신해서 새끼를 또 낳을 수도 있어서였다. 그뿐 아니라 사냥 본능이 있는 개들이 돌아다니다 고양이 등 다른 동물 또는 농작물을 해칠 우려도 있었다. 사람이 위협받을 수도 있고 농지 바로 옆이 도로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다 로드킬(동물교통사고) 우려도 있어서 묶어뒀다고 했다.  

개들을 목줄에 묶어둔 것이 안타까워 도로 쪽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주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땅을 파서 탈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80여 마리 개들을 매일 데리고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어렸을 때 행동 교육이 돼 있지 않은 개들은 입양도 힘들다. 사람의 의지만으로 100% 교육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개들이 입양을 가도 파양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센터 관계자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기에 무조건 강탈하듯이 구조하지 않았다. A씨가 개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사료는 챙겨주고 있었다. 이에 더 이상 개체수를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도와주기로 했다. 목줄을 긴 것으로 교체해주고 견사 설치 등 환경개선도 검토할 계획이다.

박병준 한국반려동물복지센터장은 "구조도 책임감이 필요하다. 개들을 습성을 공부해서 동정이 아닌 사랑으로 향후 이전 및 입양까지 고려해야 하다"며 "거처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구조하면 결국 또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동물단체는 개들을 자극하고 싸움을 유도하거나 심지어 자작극을 벌여 구조 장면을 극대화한다. 사람은 개들을 학대하는 악마로 만들기도 한다"며 "입양이 사실상 힘든 개들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불쌍한 장면을 편집해 모금하는데 이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구조 활동"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동물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키우는지 잘 몰라서 데리고 있다가 늘어난 경우도 있어서 보호와 학대의 경계가 애매한 상황도 많다"며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비난하기보다 도움을 주고 교육을 통해 인식 개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전남 해남군 모처에서 개 8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A씨는 전남 해남군 모처에서 개 8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A씨는 전남 해남군 모처에서 개 8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A씨는 전남 해남군 모처에서 개 8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시골개 환경 개선 및 개체수 조절 시급

시골에 사는 방견, 마당개와 일부 사설 보호소에 대한 개체수 조절 문제는 A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집계된 유기유실동물의 상당수는 방견이다. 이에 반려동물복지센터 관계자들은 해남군을 찾아 개들에 대한 중성화 수술 등 지원을 요청했다.

개들이 돌아다니다 유기(유실)견 신고가 들어가면 통상 지자체 보호소로 가게 된다. 지자체 보호소는 보호기간 10일이 지나면 안락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해남군에서도 개들의 보호소 입소를 원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임시 보호소도 50마리만 수용이 가능한데 개들이 계속 들어오는 바람에 포화 상태다. 더욱이 해남에는 강아지, 고양이 진료를 하는 소동물 수의사가 3명뿐이라 보호소를 관리할 수의사를 찾는 것도 어렵다. 이 때문에 개체 수 조절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박정일 해남군 축산사업소장은 "동물 입양률이 10%도 되지 않고 보호소 관리가 쉽지 않아 한계가 있다"며 "사람도 동물도 복지가 중요하다. 동물등록, 개체수 조절 등은 국가정책적 문제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남 해남군 동물보호소의 개들. 돌아다니던 개들이 임신 상태 또는 새끼들과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꽤 많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전남 해남군 동물보호소의 개들. 돌아다니던 개들이 임신 상태 또는 새끼들과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꽤 많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20일 전남 해남군 축산사업소에서 면담을 하고 있는 한국반려동물복지센터 관계자들. 사진 오른쪽 반시계 방향으로 이상성 사무국장, 박병준 센터장, 박정일 해남군 축산사업소장. © 뉴스1 최서윤 기자
20일 전남 해남군 축산사업소에서 면담을 하고 있는 한국반려동물복지센터 관계자들. 사진 오른쪽 반시계 방향으로 이상성 사무국장, 박병준 센터장, 박정일 해남군 축산사업소장. © 뉴스1 최서윤 기자

[해피펫]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 '뉴스1 해피펫'에서는 짧은 목줄에 묶여 관리를 잘 받지 못하거나 방치돼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일명 '마당개'들의 인도적 개체수 조절을 위한 '시골개, 떠돌이개 중성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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