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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북한에도 음식에 진심인 '유야호'가 있을까

'놀면 뭐하니' 속 '먹방'을 통해 본 남북의 음식 문화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 본부장으로 변신한 유재석.(MBC 제공)© 뉴스1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 본부장으로 변신한 유재석.(MBC 제공)© 뉴스1

"탱글탱글한 면발과 적당히 풀어진 달걀, 맛깔스럽게 익은 파김치 (…) 뜨거운 온천 속에서 수영하는 듯한 이 기분. (캬~) 이보다 더 완벽한 저녁이 있을까."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속 유 본부장(유재석 분)은 퇴근길 작은 식당에서 먹는 라면 앞에 한없이 '진심'이다. 그는 혼자라도 식사만큼은 거르지 않고, 맛있는 음식엔 진심으로 반응하는 '고독한 미식가'다. 하루의 피로를 맛있는 음식으로 푸는 사람들이라면 넋을 놓고 봤을 법한 장면이다.

음식에서 즐거움을 찾는 건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북한 대외용 월간지 '조선' 6월호에 소개된 '퇴근길 경흥은하수음식점' 속 주민들의 얼굴에도 어쩐지 평온함이 엿보인다. 매체는 이곳이 "하루 일을 마친 시민들과 평양역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매일같이 만원을 이루곤 한다"라고 소개했다. 왠지 그곳에도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북한 대외용 월간지 '조선' 6월호에 소개된 경흥은하수음식점.('조선' 갈무리)© 뉴스1
북한 대외용 월간지 '조선' 6월호에 소개된 경흥은하수음식점.('조선' 갈무리)© 뉴스1

음식에 진심인 북한 "무사보다 요리사"

북한에선 '의식주(衣食住)'를 '식의주'로 부를 만큼 '먹는 문제'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이 매해 주요 과업으로 제시될 정도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올 초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을 치켜세우는 것을 '국가 중대사'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당시 소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식량난은 더욱 고질적 문제가 됐다. 하지만 북한은 그 시기를 잘 극복한 것이 수령의 '은덕' 덕분이라며 오히려 체제 선전에 활용했다. 이는 북한의 민속 음식 이야기를 담은 조선영화 '설 풍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일할 기회를 포기하고 평양 의향식당 요리사가 된 류민(리성광 분)은 전국막걸리경연대회에서 입상할 목표로 막걸리 장인 조태주(신명욱 분)를 찾아간다. 폐업 위기에 처한 의향식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민속음식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조태주를 설득한 것은 류민의 '충성심'이었다.

북한 영화 '설풍경'의 한 장면. ('설 풍경' 갈무리)© 뉴스1
북한 영화 '설풍경'의 한 장면. ('설 풍경' 갈무리)© 뉴스1

군 제대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는 그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말에 김 위원장이 "무사 앞에 요리사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요리사가 음식을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야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으니 무사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그는 김 위원장이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잘 먹이는 게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했다면서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체제 선전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선군정치를 기조로 세운 김 위원장마저 요리사가 무사에 앞선다고 한 점은 흥미롭다. 1990년대 기근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니, '잘 먹는 문제'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북한에서도 남한식 '개인 먹방'이 가능할까

하지만 북한의 선전 방식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나조차도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수령의 은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배우들의 모습은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많이, 혹은 맛있게 먹는 남한의 먹방(먹는 방송)과 달리 체제 선전 요소가 필수로 들어가는 북한의 영화에서 느끼는 '이질감'이었던 것 같다.  

북한도 이를 의식했을까. 최근 선전 방식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유튜브에는 '먹방'이라고 부를 만한 영상들이 꽤 눈에 띈다. 대표적인 북한의 선전용 유튜브 채널 'NEW DPRK'에는 여성 유튜버들이 북한의 다양한 식당을 방문하고 음식을 맛보는 영상이 적지 않다. 이들은 한식당뿐만 아니라 일식, 이탈리안 식당 등을 고루 방문해 다채로운 평양 시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물론 보편적이지 않은 수도 주민들의 모습만 선택적으로 보여준다는 한계는 있다. 주민 2명 중 1명이 영양부족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실상과 별개로 북한 채널은 '정돈된' 평양을 소개하는 데 치중돼 있다는 평가가 많다. 유튜브 계정을 개인이 아닌 당국이 관리하기 때문에 비롯된 한계로 볼 수 있다.

북한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먹방.(NEW DPRK 갈무리)© 뉴스1
북한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먹방.(NEW DPRK 갈무리)© 뉴스1

유튜브 본사는 '서비스 약관 위배'를 이유로 북한 계정을 몇 차례 삭제하기도 했다. 북한 여성 유튜버 '은아'는 '에코 오브 트루스(Echo of Truth)'라는 채널이 삭제된 이후 다른 계정에 "누구를 비난하거나 거짓 소식을 전한 적이 없다"라는 내용의 영상을 올리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이마저도 곧 폐지됐다. 그저 순수하게 '먹는 것'만을 보여주는 '남한식 먹방'이 북한 채널에 진출(?)하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좋은 식재료는 보여줘야"…북한식 음식 사랑법?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북한의 진심은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에서 손에 꼽히는 호화식당은 손님이 직접 식재료를 눈으로 보고 고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선한 재료에 대한 자신감의 표명이자 좋은 재료가 맛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믿음이 바탕에 있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건 평양 중심부에 있는 대동강수산물식당이다. 2018년 7월 문을 연 이곳은 그해 9월 정상회담차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김정은 당 총비서 부부와 함께 방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만4000여㎥, 3층 규모의 이 식당은 대형유람선을 연상케 하는 외관을 갖췄다.

특히 1층에는 철갑상어, 룡정어, 연어, 칠색 송어 등 물고기들을 수용한 20여 개의 크고 작은 실내 못들이 있다. 손님이 재료를 고르면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를 해준다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이 중 200kg에 달하는 철갑상어는 "사회주의에서는 누구나 먹을 수 있다"면서 선전전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영화 '설 풍경'에서도 "철갑상어는 자본주의 나라 백만장자들도 먹고 싶지만 지갑 열기를 꺼려하고 대통령 상에나 오르는 고급 요리"지만 자신들은 수령의 은덕으로 먹을 수 있다고 언급한 장면이 있다. 식재료가 밥상에 오르기 전부터 수령의 은혜를 생각하는 셈이다.  

대외용 월간지 '조선'이 소개한 대동강수산물식당.('조선' 갈무리)© 뉴스1
대외용 월간지 '조선'이 소개한 대동강수산물식당.('조선' 갈무리)© 뉴스1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2019년 12월 평양 주민들에게 냉동 수산물(물고기 블로크)을 보내기도 했다. 물고기를 실은 열차와 화물자동차들이 평양에 속속 도착하는 모습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실렸다. 주민들은 '꽝꽝' 얼린 물고기를 받아들고 웃음꽃을 피우며 수령의 은덕을 찬양했다.

올해는 특히 농업생산 증대가 과업으로 제시됐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달부터 약 한 달가량 진행했던 봄철 모내기 사업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홍수와 태풍으로 농작물 생산에 큰 타격을 입은 북한은 연일 과학적 해결을 강조하며 피해 최소화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는 다수확의 목표를 이뤄 웃음꽃이 핀 주민들의 모습을 공개할 수 있을까. 

전통의 맛, 분단의 세월 달라진 민족 음식 조리법

북한은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식재료의 자립'을 추구하며 민족음식을 개발해 전통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조선료리협회 홈페이지에는 수백 가지 전통 음식과 조리법이 소개돼 있다.

배달, 레트로트 음식 등 빠르고 편리하게 먹는 음식이 자주 소비되고 있는 남한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놀면 뭐하니?' 속 유재석의 또 다른 부캐(부캐릭터·제2의 자아를 뜻하는 신조어) '유야호'가 매번 다채로운 전통 음식을 즐기는 장면이 특별해보인 이유일 것이다. 삼계탕, 잔치국수, 김치뿐만 아니라 누룽지, 떡, 부각 등 간식까지 그가 먹는 음식은 모두 전통 음식이다.

조선료리 홈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면, 같은 음식을 먹던 남북도 분단 70여 년의 세월을 겪으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유야호가 맛있게 먹은 국수는 조선료리에도 총 25가지 종류가 소개됐다. 쟁반국수, 냉면, 온면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국수도 있지만 마른국수섞음채, 낙지마른국수, 남새채국수, 귀밀국수, 얼레지국수, 분탕비빔, 마국수 등 생소한 종류도 많다.

북한은 특히 민족음식 조리법을 표준화 해 전국 각지에서 같은 맛을 낼 수 있게 유도했다. 북한의 대표 음식인 옥류관 냉면도 전국 각지, 심지어 중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 남북 교류가 다시 활발해진다면 음식 문화를 교류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5일 보도한 모내기 관련 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5일 보도한 모내기 관련 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농번기에 접어든 북한은 최근 노동신문을 통해 각지의 농사 진행 상황을 거의 매일 보도하고 있다. 배달과 레트로트 식품에 익숙한 남한 사람이자 북한팀 기자인 나는 매번 봐도 생소한 농사 과정을 지켜보며 새삼 '농부'의 노고를 떠올린다.

평양 시내 한복판에 물고기 덩어리가 전달되고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지만, 먹는 것에 대한 간절함과 소중함의 무게는 어쩐지 느껴지는 것 같다. 음식을 대하는 남북의 문화는 달라졌어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식재료, 전통 음식에 대한 '진심'은 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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