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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그때는 "도발" 지금은 "위협"…뭐가 틀린 건가요?

[편집자주]

지난 19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대형TV를 통해 시청하고 있다. 2021.10.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지난 19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대형TV를 통해 시청하고 있다. 2021.10.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제목이 아니다.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정부의 '달라진' 표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달 15일 불과 수 시간 차이를 두고 남북한 양측 모두에서 미사일 시험이 이뤄졌다. 북한군은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사격훈련의 일환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고, 우리 군은 서해에 있던 잠수함(도산안창호함)을 이용한 국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LBM 시험발사 참관 뒤 "오늘 우리의 미사일 전력 발사 시험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한 게 아니라 우리 자체적인 미사일 전력 증강계획에 따라 예정한 날짜에 이뤄진 것"이라며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SLBM과 함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의 항공기 분리 시험 등이 이뤄진 사실을 들어 "오늘 여러 종류의 미사일 전력 발사시험의 성공을 통해 우린 언제든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3차례에 걸쳐 "도발"로 규정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종합시험장에서 미사일전력 발사 시험을 참관하던 중 국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한 해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함장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1.9.1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종합시험장에서 미사일전력 발사 시험을 참관하던 중 국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한 해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함장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1.9.1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같은 날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도 "정세 안정이 긴요한 시기 이뤄진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도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북한은 당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앞서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9월11~12일)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이달 19일, 이번엔 북한이 함경남도 신포 인근 해상에서 잠수함을 이용한 신형 SLBM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번엔 문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당국자 어느 누구도 "도발"이란 표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오히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한의 이번 SLBM 시험발사는 "도발"이 아닌 "위협"이라고 표현했다가 야당 의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서 장관에 따르면 북한의 "도발"이란 표현은 우리 "영공·영토·영해와 국민에게 피해를 끼칠" 때 사용한다고 한다. 즉, 북한의 이번 SLBM 시험발사가 우리 측에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발"이 아니라 "위협"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서 장관은 과거 합동참모본부에서 근무할 때부터 이렇게 "도발"과 "위협"이란 용어 사용을 구분해왔다고 설명했다. 서 장관은 2017년 합참 작전본부장, 2019년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작년 9월부터 국방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2021.10.2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2021.10.2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도발'(挑發)은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을, 그리고 '위협'(威脅)은 '힘으로 으르고 협박함'을 각각 뜻한다. 사전적 의미만 봤을 때 서 장관의 설명이 일견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한 달 전엔 문 대통령도, NSC 상임위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했을까. 이때도 우리 측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긴 마찬가지였는데. 게다가 서 장관은 NSC 위원이기도 하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북한은 올 3월25일에도 신형 전술유도탄(단거리 탄도미사일 KN-23 개량형) 2발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의 올해 첫 탄도미사일 발사였다.

이때 우리 국방부가 배포한 자료를 보면 조용근 대북정책관과 데이드 헬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대행은 3월26일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북한이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도록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 장관의 국감 답변대로라면 여기서 "도발적"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이 당시에도 북한의 미사일은 우리 측은 물론, 미국 측에도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이 지난 19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시험발사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이 지난 19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시험발사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다시 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을 얘기한 9월15일로 시계를 돌려보자. 이날 오후 늦게 북한에서 담화가 하나 나온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 명의 담화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우리 미사일 전력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는 문 대통령 발언을 "부적절한 실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의 실언이 사실이라면 소위 한 개 '국가'의 '대통령'으로선 우몽하기(어리석고 사리에 어둡기) 짝이 없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기자들 따위나 함부로 쓰는 '도발'이란 말을 망탕(되는대로 마구) 따라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또 자신들의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과의 우리의 '국방중기계획'이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이후 '2중 기준 철회' 요구로 이어졌다.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정말 서 장관 설명처럼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다른 건지, 아니면 "기자들 따위나 함부로 쓰는 말"이란 북한 측 '조언'에 따라 우리 당국자들도 "도발"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한 건지.

우리 정부는 대북 문제와 관련해 늘 한미 양국이 "긴밀히 공조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이번 SLBM 발사를 "도발(provocation)"로 규정했다. 정말 뭐가 맞고 틀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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