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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에게도…아름답고 소중하며 짧았던 청춘 [N리뷰]

[편집자주]

'태일이' 스틸 컷 © 뉴스1
'태일이' 스틸 컷 © 뉴스1

애니메이션 '태일이'는 전태일 열사의 짧은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 항거한 22세의 젊은 재단사로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태일이'는 21세기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거나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이는 전태일 열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할만한 계기가 된다.

지난 1일 개봉한 '태일이'는 순수하고 따뜻했던 청년 전태일의 짧은 생애를 몽글몽글하고 촉촉한 톤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무려 5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젊은이의 생애는 애니메이션으로 되살아나 오늘날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영화는 가난하고 불행하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했던 어린 태일이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남의 집 대청 마루 아래서 거적을 깔고 어머니와 함께 잠을 청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미싱사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태일이는 누구보다 성실한 청년이다. 재단사가 되면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미싱사를 그만두고 재단사 보조로 들어가게 된 태일이는 사장의 신임을 받아 어린 나이에 재단사가 된다.

태일이에게도 첫사랑은 있었다. 평화시장 가게 일을 봐주는 사장님의 처제와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 설렘을 느낀 것. 하지만 사장님의 처제는 결혼할 남자가 있었고 태일이의 첫사랑은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태일이는 성실한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하다. 그는 푼돈을 벌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어린 보조들이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걸려 퇴근 후 주머니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떠난다. 정작 자신은 풀빵 사는 데 차비를 다 써버려 밤새 집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할지라도, 태일은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한다.

60년대 말, 70년대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기만 하다. 사장이 재단사에게 돈을 주면, 재단사가 미싱사들에게 월급을 나눠주고, 미싱사들은 그 돈에서 얼마를 떼어 시다들에게 나눠준다. 보장된 임금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그뿐 아니라 주로 여성인 봉제 노동자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분진이 가득한 작업 환경 때문에 폐병에 걸리기도 한다.

자신의 힘만으로 모두의 비참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어 고민하던 태일이는 아버지를 통해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법전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평화시장 재단사들과 함께 바보회를 조직해 노동운동을 시작하지만 이를 알게 된 사장은 태일이를 해고해버리고 만다. 잠시 평화시장을 떠나 방황하던 태일이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태일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평범하고 순수했던 청년 전태일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사려깊은 말로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착한 아들, 최선을 다해 일했던 성실한 재단사,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에 설레어 하는 청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로서의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우리에게 '열사'로 기억되지만, 실은 그 시절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가난하고, 따뜻하고, 희망을 품으며 살아갔던 작고 어린 청년이었던 전태일을 상상해볼 수 있다.

50여년 전 평화시장과 청계천 일대의 풍경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실감나게 재현됐다. 이는 단편 애니메이션 '바람을 가르는' '맵: 프롤로그' '요일마다' 등으로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던 홍준표 감독의 공이다. 홍 감독은 고증을 위해 노력했을 뿐 아니라 빛을 통해 표현되는 특유의 따뜻한 색감으로 '태일이'만의 부드럽고 멜랑콜리한 감성을 만들어냈다. 지난 1일 개봉. 러닝 타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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