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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기업 시상식 우후죽순…스타트업들 "그건 얼마짜리야, 웃죠"

가격별로 선택 가능하고 할인도…시상은 연중 수시로
시상식 명도 헷갈려…1개 업체가 14개 시상식 주최도

[편집자주]

A업체가 허정연씨가 운영하는 업체에 보낸 시상식 홍보자료 중 일부. 수상 특전 제공에 대한 구체적인 가격이 담겨있다. © 뉴스1
A업체가 허정연씨가 운영하는 업체에 보낸 시상식 홍보자료 중 일부. 수상 특전 제공에 대한 구체적인 가격이 담겨있다. © 뉴스1

시상식의 시즌인 연말, 지난해 11월28일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0대 사업가 허정연(가명)씨는 회사 메일함에 남아있는 각종 시상식 참여 제안 이메일들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소비자만족대상' '○○브랜드대상' '○○어워즈' '○○고객만족대상' 등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상의 이름들이 열거됐다. 

메일을 보낸 곳에서는 하나 같이 자신들을 '공신력 있는 상을 주는 곳'이라고 홍보했지만 메일들은 모두 '광고'로 분류됐다. 정연씨는 "상반기, 하반기 나눠서 5~6건씩 이런 메일이 온다"고 말했다.

정연씨는 이런 부류의 상들에 대해 "이런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돈만 주면 상을 다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젊은 사업가들이 만날 때 이런 상을 받는다고 하면 '그건 얼마짜리야'라고 물어볼 정도"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홍보 효과 광고하며 상품 팔 듯 상 판매

실제 정연씨가 받은 시상식 안내 이메일 중에는 구체적인 금액을 적어서 홍보물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수상을 상품처럼 팔고 있는 것이다. 이 메일을 보낸 업체인 A사는 자신들이 주관하는 3가지 상을 소개하면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실속있고 다양한 특전을 제공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A사가 보내온 홍보자료를 살펴보면 3개의 상은 그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소개 내용은 단어 몇개만 바꾼 수준이었다. 홍보 자료에는 수상 기준으로 '대중성·혁신성·차별성·신뢰성·소비자만족도·글로벌역량' 등을 내세웠지만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세부지표는 나와 있지 않았다. 또 심사 과정에 대해서도 '약 7일 소요'라는 말 이외는 어떤 과정이 진행되는지 소개돼 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가격적인 면은 비교적 정확히 소개되어 있었다. 수상 특전은 스탠다드(Standard)와 디럭스(Deluxe) 두 가지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었는데 스탠다드를 선택할 경우 '엠블럼, 배너 등 이미지 리소스 제공' '실물 상장, 트로피 제공' '온라인 특집기사보도' 등의 특전이 제공되고 디럭스를 선택하면 스탠다드 특전에 더해 '블로그 포스팅 30회 제공'이 추가됐다.

지난 31일 온라인 포털에 '브랜드대상'이라고 검색하자 노출된 시상식 업체들의 광고 링크들.© 뉴스1
지난 31일 온라인 포털에 '브랜드대상'이라고 검색하자 노출된 시상식 업체들의 광고 링크들.© 뉴스1

가격은 스탠다드 129만원, 디럭스 179만원이었다. 업체로부터 먼저 메일을 받고 한정된 기한 내에 수상을 신청할 경우 30만원 가량의 할인 혜택도 제공됐다.

더불어 A사는 수상을 원하는 기업들로부터 '상시적'으로 수상 신청을 받고 있었는데 때문에 상을 받은 업체들의 시상 시기도 제각각이었다. 수상 부문도 신청업체에 맞게 '맞춤 제작'하는 것으로 보였다. 국내에서 '마대자루'를 생산하는 한 업체는 올해 A사로부터 '마대자루/공업용랩 부문' 대상 브랜드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돈을 받고 상을 주는 이런 업체들에 대해 정연씨는 상을 주는 곳에서 이야기하는 시상 비용도 100만에서 600만원까지 다양하다면서 "저희 같은 경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이긴한데 정부 사업을 수주했다거나 해서 알려진 업체들에게는 엄청 연락이 간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시상식들의 특징은 외부 홍보에 목마른 기업들을 대상으로 수상 실적을 만들어 주고 이를 언론에 보도할 수 있게 해줘 홍보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상식을 주최하는 업체들은 자신들 자체적으로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거나 국내 주요 언론사들과 후원 계약을 맺고 있었다.

앞서서도 후원사나 주관사로 참여하는 언론사들이 수익을 목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시상식에 이름을 빌려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됐지만 이런 종류의 시상식은 연말만 되면 계속되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난 시상식들 동일한 이름에 혼란도

연말 시상식 시즌을 지나면서 온라인 검색 포털에 '브랜드 대상' '소비자 대상' 등 몇가지 검색어만 입력해봐도 수십개의 시상식이 검색되고 또 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는 업체들도 수도 없이 노출됐다.

특히 시상식을 주최하는 업체들이 여러 이름의 상을 만들고 상품처럼 골라서 수상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2013년 설립된 B업체의 경우 점차 시상식 개수를 늘려서 현재는 14개의 시상식을 주최하고 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은 채 우후죽순처럼 시상식들이 늘어나자 서로 이름이 헷갈릴 정도로 비슷한 명칭의 시상식들이 많았고 아예 똑같은 시상식명을 사용하는 시상식도 찾을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산업정책연구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이 이름이 많이 차용되는 사례였다. 산업부의 대한민국브랜드대상은 국내 유일의 브랜드 관련 정부 포상제도다. 때문에 심사기준이나 선정과정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공개돼 있다.

D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 수상 기업들을 소개한 언론 보도내용. 산업부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과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 뉴스1
D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 수상 기업들을 소개한 언론 보도내용. 산업부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과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 뉴스1

그런데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 시상식은 두 건이나 더 찾을 수 있었다. 브랜드 관련 C협회와 마케팅 관련 D협회는 산업부의 그것과 동일한 '대한민국브랜드대상'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상식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 협회 관계자들은 '시상식 명칭에 독점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산업부 관계자는 "대한민국브랜드대상은 국내 유일한 브랜드 관련 정부 포상인 만큼 동일한 이름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해당 협회 측에 관련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시상식이 돈으로 상을 사고파는 식으로 변모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품과 브랜드가 공인받는 상품과 브랜드로 둔갑해 소비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연씨의 경우 거래처들을 만날 때 이름 모를 상을 받은 기업들은 "거르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시상식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브랜드 신뢰 제고 효과'를 홍보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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