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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스토리]때아닌 '멸공' 논란에 불붙인 인스타…"고무줄식 가이드라인"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 게시물 삭제로 '멸공' 인증 이어져
플랫폼의 '묻지마식' 가이드라인 적용이 논란 키웠다

[편집자주] '後(후)스토리'는 이슈가 발생한 '이후'를 조명합니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 묻혀버린 '의미'를 다룹니다. 놓쳐버린 뉴스 이면의 '가치'를 되짚어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22.01.05/뉴스1 © 뉴스1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22.01.05/뉴스1 © 뉴스1

멸공 논란이 2022년 새해 벽두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보수 정치권 인사를 중심으로 '멸치'와 '콩'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멸공'이라는 단어 때문에 삭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진 풍경이다.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며, 화살의 방향을 현 정부를 향해 돌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플랫폼의 자의적인 가이드라인 적용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스타 게시물 삭제로 시작된 멸공 인증 사태

'멸공' 혹은 '멸콩' 인증 릴레이는 지난 5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삭제됐다는 내용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삭제된 글은 숙취 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정 부회장은 '멸공'이라는 단어 때문에 게시물이 삭제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고, 연일 '멸공' 태그를 붙인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인스타그램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며 "폭력 및 선동에 관한 인스타그램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안내했다.

인스타그램의 '신체적 폭력 및 선동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공공의 안전에 실질적인 피해나 직접적인 위협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는다. 세부 항목으로는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언어 △사망·폭력 또는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협 △무기 제조 방법에 관한 안내와 관련한 글을 제재한다.

구체적인 위반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후 인스타그램 측은 시스템 오류로 게시물이 삭제됐다며 하루 만에 해당 게시물을 복구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멸공 언급이 이어졌고, 이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나경원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야권 인사들이 호응하며 멸치와 콩을 찍어 올리는 멸공 인증샷 대열에 합류했다. 여권에서는 색깔론 공세라며 이 같은 움직임을 비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이마트 이수점에서 여수멸치와 약콩을 사고 있다. 윤 후보는 인스타그램에 두 사진을 올렸다.(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제공)©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이마트 이수점에서 여수멸치와 약콩을 사고 있다. 윤 후보는 인스타그램에 두 사진을 올렸다.(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제공)© 뉴스1

◇문제는 '묻지마식' 가이드라인 적용 과정

일각에서는 국가 검열 주장도 제기됐다. 정부의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콘텐츠 삭제 요청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주무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멸공 게시물 관련) 민원 신고가 들어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민원 접수 후 심의·검토를 거쳐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게시물 삭제 등의 시정 요구를 하게 돼 있다.

결국 인스타그램의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돼 정 부회장의 게시물 삭제 조치가 이뤄진 셈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22.01.05/뉴스1 © 뉴스1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22.01.05/뉴스1 © 뉴스1

그렇다면 실제 '멸공'이라는 단어 때문에 게시물이 삭제된 걸까. 이에 대해 인스타그램 관계자는 "시스템상의 오류로 게시물이 삭제된 건으로, 해당 단어 자체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며 "자세한 프로세스 공유는 어렵다"고 말했다.

게시물 삭제 조치가 인공지능(AI) 필터링 기술에 의한 것인지, 사람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선 "AI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돌아가며, 추가 검토가 필요할 때 리뷰팀이 2차 리뷰를 진행하게 된다. AI 시스템만으로도 삭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처럼 어떤 경로로 게시물 삭제가 이뤄지는지 이용자는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의 불분명한 콘텐츠 삭제 기준이 재벌 3세 인플루언서, '멸공'이라는 냉전의 언어, 대선 기간과 맞물리며 이 같은 논란을 키운 모습이다.

또 정 부회장의 경우 콘텐츠 복구 과정이 비교적 신속히 이뤄졌다는 점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은 콘텐츠 재검토 요청에 대해 "인스타그램의 결정에 관해 답변을 받으려면 최대 90일이 걸릴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콘텐츠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이른바 '고무줄식 검열'에 대한 문제 제기는 페이스북, 유튜브 등 플랫폼 서비스에서도 지속돼 왔다. 페이스북은 국내에서 혐오표현을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김치녀'는 허용하고 '한남충'은 혐오발언으로 대응해 잣대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유튜브 역시 콘텐츠 삭제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아동 콘텐츠 관련 정책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모호한 정책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5월에는 방송인 도경완이 딸의 낮잠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삭제됐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방송인 도경완이 공개한 유튜브의 콘텐츠 삭제 배경 설명 메일. 유튜브 측은 구체적인 위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도경완 인스타그램 갈무리) © 뉴스1
방송인 도경완이 공개한 유튜브의 콘텐츠 삭제 배경 설명 메일. 유튜브 측은 구체적인 위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도경완 인스타그램 갈무리) © 뉴스1

송경재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은 재작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양극화, 증오 표현 문제로 내부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추세였다"며 "문제는 기업의 내부 기준으로 만들었을 때 사회적 합의, 컨센서스가 반영됐느냐는 점이고, 그런 것들이 반영 안 되고 일방적 통지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자의적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은 "혐오표현 차단 과정을 사회적으로 같이 만들어나가는 게 이상적이지만, 한쪽에서는 기술의 선의를 의심하면서 접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해 서로 자기주장만 맞다고 싸우는 경우가 흔하다"고 짚었다.

이어 "상호 존중을 유도해줘야 한다"며 "최소한 플랫폼이 잘못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즉각 고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단순히 유명인이 한마디했을 때 반짝 화제가 되는 거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스타그램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은 플랫폼 내 허용되는 활동 및 콘텐츠의 기준을 제시하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오고 있다"며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을 반영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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