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바이든, 核 '단일목적 사용' 사실상 폐기… 북중러 위협 때문?

새 NPR서 선제사용 포함한 '전략적 모호성' 유지 전망
한·일·유럽 등 동맹국 '확장 억제 약화' 우려 감안한 듯

[편집자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만 핵무기로 보복한다'는 자신의 선거공약을 사실상 폐기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2022년판 '핵 태세 검토'(NPR) 보고서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 역할은 미국과 우리의 동맹·우방국들에 대한 핵공격을 억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 국방부는 "미국은 미국과 동맹·우방국들의 핵심 이익을 방어하는 극단적 환경(extreme circumstances)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란 입장 또한 천명했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새 NPR 요약문엔 미국이 핵무기를 쓸 수 있는 "극단적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적의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에 대응한 선제 핵공격'까지 포함하는 '전략적 모호성 핵정책'이 유지될 것이란 의미가 이번 NPR에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바이든 대통령이 과거 후보시절 약속했던 핵무기의 '단일 목적 사용'(sole purpose) 원칙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핵 없는 세상'을 기치로 내걸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부통령을 지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핵무기 능력·역할 확대'를 추구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이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19년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협의회'(CLW) 주최 행사 참석 당시에도 "필요한 경우에만 핵무기로 보복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던 그가 핵무기의 '단일 목적 사용' 원칙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건 최근 국제정세와 동맹국들의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당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우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에 나서면서 '제3자가 개입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었다. 현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아시아에선 중국의 핵증강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북한 또한 올 들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 선언을 파기하는 등 핵·미사일 개발과 그 기술 고도화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이달 24일엔 4년여 만에 처음으로 ICBM 시험발사를 진행한 데다. 최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선 핵실험용 지하갱도 복구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 관측통들로부턴 "북한이 조만간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처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국·러시아의 핵능력 증강 및 위협 등으로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안보 불안이 점증되고 있는 와중에 바이든 정부가 핵무기의 '단일 목적 사용' 원칙을 새 NPR에 반영했다면 "동맹국들로부터의 불신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바이든 정부 스스로 주요 동맹국들이 너도 나도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나서는 '핵도미노' 현상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은 앞서 미 정부가 새 NPR에 핵무기의 '단일 목적 사용' 원칙을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보도가 나오자, "미국의 '핵우산' 또는 '확장 억제' 약화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우려하는 입장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바이든 대통령이 핵무기 '단일 목적 사용' 구상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핵위협에 노출된 국가들로부터 서로 핵무장을 하겠다는 얘기가 다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핵무기의 '단일 목적 사용'은 언뜻 보기엔 간단한 것 같지만, 실제론 복잡한 경우의 수가 얽혀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달리 핵은 물론 생화학무기도 없다. 동맹국이 맞닥뜨릴 수 있는 일련의 위협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암묵적인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 간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NPR은 미 정부가 추구하는 핵정책 기본방향을 담은 보고서로서 지난 1994년과 2002년, 2010년, 2018년, 그리고 올해까지 모두 5차례 발간됐다.
연관 키워드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