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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 이어준 다리 ‘코다 코리아’…”불쌍한 시선으로 안봤으면”

[경계인 코다] ②작년 비영리 출범…운영진 한민지씨
"큰 위로…농인과 청인, 코다 즐겁게 사는 사회 꿈꿔"

[편집자주] 농인들 가운데 약 80%는 농인끼리 결혼합니다. 이들이 출산하는 자녀 가운데 90%는 청인인데, 우리는 그들을 코다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농문화와 청인문화라는 이중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부모와 세상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그들의 삶을 살펴보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할 점은 없는지 총 3편의 기사 연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1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역 앞에서 만난 한민지 코다코리아 운영위원이 '코다'를 뜻하는 수화를 하고 있다.  2022.4.1/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지난 1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역 앞에서 만난 한민지 코다코리아 운영위원이 '코다'를 뜻하는 수화를 하고 있다.  2022.4.1/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농인(聾人) 부모를 둔 비장애 자녀,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는 비장애인들에게는 낯선 단어였지만 최근 동명의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있기 전 약 10년 동안 국내 코다들은 '코다코리아'라는 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일들을 해왔다.

2014년 한국농아인협회 주관으로 열린 한 행사 중 코다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계기가 돼 시작된 코다코리아는 자신들을 알리고 교육하는 활동을 해오다 2021년 비영리 단체로 정식 출범했다. 현재 매달 정기 모임을 하고 있으며 코다와 농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칼럼 작성, 언론사 인터뷰, 유튜브 출연 등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는 코다입니다'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뉴스1은 지난 1일 코다코리아 운영진 중 한명인 한민지씨를 만났다. 본인도 코다인 한 운영위원은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수어통역사, 수어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스1은 그에게 코다코리아가 코다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었다.

먼저 한 위원은 코다코리아가 회원들이 누구에게도 얻을 수 없었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공간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코다들은 자신들은 농인과 청인(聽人, 들을 수 있는 사람)의 경계에 있다고 느낀다. 농인 부모 밑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코다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도 어렵다.

코다코리아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정기 모임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한 위원은 "(청인인) 친구들과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가 없어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라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은 아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모임을 통해 코다들은 삶에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불편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한 위원은  최근에는 화상 통화 기능과 버튼 입력식 신고 기능이 있는 119 앱을 회원끼리 공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나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많지만 한 위원은 코다들이 모임을 통해 '나 혼자 동떨어진 별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코다'라는 단어 자체가 그들에게 동질감을 준다고 했다. 한 위원은 과거에는 자신들을 부를 별도의 용어가 없었지만 코다라는 용어를 통해 정체성이 생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위원은 코다들이 성장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모임을 통해 이런 상처들을 보듬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회가 자신들을 '불쌍한 존재'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코다들에게 원하는 이미지는 '부모님이 장애가 있지만 극복하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부모님과의 사이에서도 즐겁고 재밌는 일화들이 많은데 슬프고 안타까웠던 사연들만 보도되는 것도 아쉽다고 했다. 또 장애인 가족은 가난하고 슬프고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는 편견도 이제는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코다코리아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한 위원은 "농인과 코다들이 한국 사회에서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임' 정도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가난하고, 힘들고, 불쌍해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나름대로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고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코다와 농인들이 즐겁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청인들도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위원은 가장 먼저 어린 코다들이 많은 통역을 해야 하는 상황부터 바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다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통역사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통역해야 해 힘들어 하거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위원은 만약 수어 사용이 더 보편화 되고, 농인들의 정보접근성이 청인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농인들도 주체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세상이 되면 코다들의 고충도 사라지고 코다들이 농인인 부모님을 대하는 시선도 더 긍정적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한 위원은 비장애인들이 코다들을 사회로 '교화' 시켜야 할 대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미취학 코다들의 경우 '농인 부모와 자랐기 때문에 발음 교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언어교육 지원이 '발음교정'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며 반대로 부모와의 소통을 위한 수어 교육은 미비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인식 때문에 코다들 중에 수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부모와 간단한 대회 외에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한 위원은 "한국수어법 12조에 보면 농인 가족에 대해서는 수어 교육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코다코리아는 올해부터 과거보다 더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린 나이의 코다들에게 성인 코다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해주는 교육을 계획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 내 코다 당사자들이 함께 모이는 '아시안 코다 콘퍼런스'를 올해 9월에 온라인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코다코리아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이 매년 개최하는 '코다 국제 콘퍼런스'를 유치하는 데 성공해 오는 2023년 6월 국내에서 열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전세계 30여개 나라에서 300~400명 정도의 코다가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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