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번역가가 된 '혈우병' 박현묵 이야기…'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서평]

[편집자주]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News1 

중증 A형 혈우병 환자는 피가 응고하도록 만드는 정상 인자가 유전적으로 없거나 부족하다. 국내외적으로 매우 드문 유전질환인 중증 A형 혈우병 환자 박현묵은 2013년 초등학교 졸업 이후 중, 고등학교는 단 하루도 다니지 못했다. 근 7년 동안 현묵에게는 침실이 세상의 전부였다. 어린 현묵은 휠체어를 타고 가 근처 도서관에 종종 가곤 했다.

해리 포터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던 어느 날, 현묵은 '반지의 제왕' 책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롭게 '반지의 제왕' 1편에 도전했지만 그 도전은 2편, 3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반지의 제왕’ 책을 잊고 살 무렵 현묵은 문득 톨킨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알아보며 점점 톨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묵은 톨킨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중간계로의 여행'에 가입해 카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국내에 번역된 적 없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 번역에 도전한다. 가장 육체적 암흑기였던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93건의 번역 원고를 올렸다.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 '중간계로의 여행'에서 잠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현묵은 천천히 꿋꿋하게 번역을 완성시켰다.

2019년 여름, 현묵은 기존의 모든 치료제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받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해외 신약의 국내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해 신약을 만나고 내출혈이 거의 사라지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그와 동시에 현묵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 계약을 맺고 번역 원고를 탈고해 출판사에 넘겼다. 검정고시 패스 후 같은 해 12월에 수능을 보고 서울대 입시에 도전해 현묵은 ‘합격’이라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내가 무엇을 못 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장애 때문이 아니죠.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는 상태였어요. 혈우병도 장애도 저의 주인은 아니었어요" -박현묵(본문 중에서)

이 책은 박현묵이라는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비극 속에서 비극에 휩쓸리지 않고 그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유연함을 잃지 않는 그의 삶의 태도를 말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공부란 본질적으로 어떤 행위인지 어떤 태도를 통해 완성되는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저자는 '장애'라는 부분을 걷어내고 박현묵이 가장 경쟁력 있는 것으로 이뤄낸 빛나는 성취가 무엇인지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강인식 지음 / 원더박스 / 1만6000원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