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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표 촬영감독 "봉준호 심해어 애니 작업 中…엄청난 작품될 것" [N인터뷰]①

[편집자주]

홍경표 촬영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홍경표 촬영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홍경표 촬영감독은 봉준호 감독, 이창동 감독 등 거장들과 함께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써왔다.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부터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 이명세 감독의 'M'(2007)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와 '설국열차'(2016) '기생충'(2019),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까지. 한국 영화 대표작들의 인상적인 순간이 모두 그의 렌즈에서 나왔다. 최근 홍 감독은 해외 거장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는 영화 '브로커'를 함께 했고, '훌라 걸스'(2007)와 '용서받지 못한 자'(2013) '분노'(2017)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과는 '유랑의 달'을 함께 했다. 특히 '유랑의 달'은 현재 개최 중인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에 초청을 받아 관객들을 만났다. 난생 처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는 홍경표 촬영 감독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나 '유랑의 달', 그리고 그밖에 거장들과 진행 중인 신작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호랑이 해에 데뷔했어요. 프랑스 월드컵이 있던 해였죠. 그래서인지 올해 새롭게 무장해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영화 '하우등'(1998)에서 촬영 감독으로 데뷔한 후 24년. 홍경표 촬영 감독은 이창동, 봉준호 등 한국 영화의 현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과 작업해왔다. 어느덧 화려하게 쌓여버린 필모그래피의 무게가 무거웠던 것일까. 홍 감독은 요즘 이전과는 다른 협업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촬영 감독이 조명, 그립 팀을 하나의 팀으로 꾸려 프로젝트를 맡았다면 이제는 팀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 '유랑의 달'에서도 촬영팀은 홍경표 감독의 팀이었지만, 조명, 그립 팀은 일본의 스태프들이 전담했다.

"예전에는 팀으로 했는데 '기생충' 이후에는 해체했어요. 매너리즘에 빠지기 싫고 새롭게 하고 싶어서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도 일본에서는 일본 팀, 방콕에서는 방콕의 조명과 그립 팀이 담당했었죠. 메인 컨트롤은 내가 하는 거지만요."

'유랑의 달'은 일본 나기라 유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 19세 대학생 후미가 고모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는 10세 소녀 사라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유괴 죄로 체포되고 이후 15년 만에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이상일 감독과의 작업은 이상일 감독과 친한 봉준호 감독을 통해 이뤄졌다.
'유랑의 달' 스틸 컷 © 뉴스1
'유랑의 달' 스틸 컷 © 뉴스1
"이상일 감독이 '기생충' 현장에 놀러왔었어요. 그 전에 이 감독의 작품 '분노'(2017)를 봤었고요. '분노'를 감동깊게 봤다고 인사를 했었죠. 이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끝내고 난 뒤에 봉준호 감독을 통해서 연락이 왔어요. '내년에 들어가는 '유랑의 달'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주연 배우는 히로세 스즈다,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요. 그러면 같이 하자고 했고, 한국을 하니 통화도 했었어요."

홍 감독은 원작인 소설 '유랑의 달' 읽었다고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시나리오는 한국말로 번역이 돼 왔다. 두 시간 안에 소설이 가진 감성이 잘 녹아있는 각본이었다고.

"기본 콘셉트는 자연스러운 빛이 핵심이었어요. 다행히 운 좋게 어린 시절, 호수에 해가 쨍할 때 물속에서 헤엄치는 장면은 상쾌해야 하고, 어떤 날은 흐려야 하고 어떤 날은 바람이 불고, 그런 것들이 운좋게 잘 찍혔죠. 호수에서도 3일 있었는데 맑은 날 흐린 날에 비까지 와줬죠."

어떤 작품은 날씨와 협업해 예상보다 더 훌륭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홍 감독은 "항상 준비를 열심히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뭔가 그런 것(자연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면서 이번 영화에서도 자연이 도와줘 포착할 수 있었던 영화적인 장면이 있었다고 했다. 후미와 사라사가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들고 다리를 건너갈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등장해 다리를 훑고 지나가는 장면이다.

"이게 뭐지? 운이 되게 있었어요.(웃음) 그 장면이 정말 운명적인 느낌을 줬죠. 어떻게 이렇게 '럭키'할 수 있었을까.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자연은 때때로 의도치 않은 느낌을 주는데, 그럴 때마다 촬영 감독으로서 쾌감이 있어요."

어쩌다 보니 홍경표 촬영 감독은 '브로커'에 이어 '유랑의 달'까지, 연이어 두 명의 일본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제의는 '유랑의 달'이 조금 먼저 해온 것이었지만, 촬영은 '브로커'가 앞섰다. '브로커'는 일정이 타이트해 하마터면 참여하지 못할 뻔 했으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꼭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줘 시간을 조정해 참여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해 한 행사 자리에서 홍경표 촬영 감독이 촬영 전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라!" 하고 소리쳤던 장면이 인상깊었다며, 그의 열정에 대해 감탄을 표한 바 있다. 홍경표 감독에 따르면 그는 "바람아 불어라"를 일본어로 했다. 그래서 고레에다 감독이 이를 알아듣고 반응할 수 있었다.

"'유랑의 달'도 그렇고 '브로커'도 그렇고 어떤 공간을 찍을 때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게 중요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바람이나 그런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죠. (어떤 장면에서는)화면에 바람이 불면 좋지 않겠는가 싶었고, 그건 일본 말로 하기 쉬워서 '바람아 불어라' 하고 일본어로 말했죠. 제일 먼저 배운 일본어가 그거였어요."

홍경표 촬영 감독은 재일교포 및 일본인 감독과 하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도전'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전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방식을 일을 해보는 것이 이 도전의 목표였다.
'브로커' 포스터 © 뉴스1
'브로커' 포스터 © 뉴스1

"요새는 20년의 경력을 다 잊어버리자는 생각이 강해요. 지금보다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고 느낄 때는 그냥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쌓아가는 게 중요해요. 잊는다고 잊히지 않겠지만 그걸 버리고 새롭게 해나가고 싶어요. 일본 영화는 배우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스태프도 다르고 분장도 의상도 다 달라요. 꾸려나가는 방식이 달라서 그것을 새롭게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건 나한테 도전이니까."

요즘 홍경표 촬영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심해어 애니메이션을 함께 작업 중이다. 심해 생물과 인간들이 얽혀 있는 드라마를 다루는 풀 CG애니메이션. 홍 감독은 비주얼 라이팅 쪽을 맡아 봉준호 감독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버추얼 촬영이라고 하는 걸 하려고 합니다. 내년 여름에는 출퇴근을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할리우드에서 촬영하는 방식으로 촬영을 해보려고 합니다. 로저 디킨스 촬영 감독이 '월-E'를 시네마토그래프 한 것처럼 '소울'도 그렇고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촬영 감독들이 애니메이션도 디피(Director of Photography)를 하기 때문에 그 시스템으로 심해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빛의 움직임이나 이런 것을 같이 해 스토리보드와 카메라,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엄청난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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