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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에 줄소송?…누가 얼마나 돌려받을까

'정년보장형'이라면 임금 돌려받을 가능성 높지만…기준 따져봐야
소멸시효 3년…'재직 눈치'에 소 제기 안하면 '물거품'

[편집자주]

 대법원 모습. 2020.12.7/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대법원 모습. 2020.12.7/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대법원이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현재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이들 중 임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대상과 그 범위에 관심이 모인다.  

하지만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는 임금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26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적용된 임금피크제는 노사 합의가 있었더라도 고용자고령법상 연령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대법원은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연령 이상 노동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

대법원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단과 함께 기준까지 제시하면서 향후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노동자들의 임금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년보장형'이라면 임금 돌려받을 가능성 높지만…기준 따져봐야

이번에 대법원에서 판단한 임금피크제 유형은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노동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다.

대법원은 Δ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이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고 Δ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으며 Δ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았고 Δ임금피크제 전후 A씨에게 부여된 업무 내용에 차이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차별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업체들 중  이같은 사유가 있는 노동자라면 임금 소송을 통해 급여를 일부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이거나,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면서 업무 강도를 낮춘 경우 등 다른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는 임금소송을 내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말 전체 공공기관에 도입됐다. 이후 민간기업으로도 빠르게 확산돼 2016년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의 절반 정도인 46.8%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다만 '정년유지형' 및 '정년연장형' 등 유형별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은 구체적인 통계가 없는 상태다.

◇소멸시효 3년…'재직 눈치'에 소 제기 안 하면 '물거품'

이번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A씨는 임금피크제가 적용된 2011년 4월부터 퇴직 시점인 2014년 9월까지의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청구했지만, 최종적으로는 2011년 10월 이전 기간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A씨가 14년 9월 말 소송을 냈기 때문에 근기법상 2011년 9월29일 이전에 발생한 임금채권은 시효가 소멸됐다고 봤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어 재직 중에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수 없었으므로 사측의 소멸시효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사측이 A씨의 임금채권 행사를 불가능 또는 곤란하게 했거나, 시효중단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 등을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도 임금채권의 소멸시효와 관련해선 채무자(고용주)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근로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채무자의 소멸시효 연장을 인정하고 있다.

요컨대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이를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A씨와 같은 상황에서는 회사에 감금되는 정도 수준이 아닌 이상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중단되거나 정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채권자가 권리행사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의 강도나 물리적인 상황을 고려해 판단이 이뤄지겠지만 개인적인 상황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재직 중에 눈치가 보여서 소 제기를 못 했다는 주장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10년이지만…현실적으로 어려워

법조계 일각에서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되면 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선 단순히 위법한 행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불법행위를 했다는 정황이 나와야 하는데 임금피크제 도입의 경우 회사가 의도적으로 불법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이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기본 전제는 성립된다. 그럼에도 사실상 기업이 의도적으로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 해석이다.

법원에서도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가 위법성이 있는지 판단하는데 1심부터 대법원까지 8년이 걸렸다. 이미 도입한 기업들이 위법성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도입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은) 차별이란 것을 인정해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것은 확인이 된 것이고, 이때 차별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별도로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며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차별과는 별개의 문제고 귀책사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날 대법원이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도의 위법성을 인정한 만큼 이날 이후 비슷한 제도가 도입된다면 불법행위로 볼 여지는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어쨌든 노사합의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 이전에 제도를 도입한 것은 불법행위의) 고의성을 인정하긴 힘들 것"이라며 "만약 (이번 판결 이후에도) 동일한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면 임금체불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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