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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논할 대학 맞는지 회의감"…연세대 교수, 청소노동자 고소에 일침

"수업권 보장 의무, 청소 노동자 아닌 학교에 있다" 지적
"'에브리타임'은 대학 내 혐오 발화의 온상, 나쁜 영향"

[편집자주]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나윤경 교수의 강의계획서.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나윤경 교수의 강의계획서.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연세대학교의 한 교수가 재학생들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고소한 것과 관련 목소리를 내고 강의를 개설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 30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화인류학과 나윤경 교수의 강의 계획서가 갈무리돼 올라왔다.

글쓴이는 "연세대 청소 노동자 고소 및 최근 약자 관련 이슈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신 것 같은 연세대 교수님의 강의 계획서"라고 소개했다.

나 교수가 개설한 과목은 '사회 문제와 공정'으로, 3학점짜리 강의다. 핵심 역량은 △도전지식탐구 40% △융합적 사고력 30% △소통과 협업 30%로 나뉘어 있다.

수강 대상은 연세대 재학생으로, 캠퍼스에 따른 제한이 없다. 다만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플랫폼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느끼는 학생이라면 더욱 적합하다고 적혀 있었다.

수업 목표 및 개요에 대한 설명은 무려 A4 용지 한 장 분량이었다. 핵심은 '에브리타임'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다.

나 교수는 "20대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2030 세대 일부 남성들의 '공정감각'은 '노력과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라는 기득권의 정치적 레토릭인 능력주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며 "한국의 현 대통령은 늘 공정과 상식에 기반을 둬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한다면서 검사들만을 요직에 배치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기회와 자원에 있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는 한국의 2030 세대가 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특권을 향유하는 현재의 기득권을 옹호하는지는 가장 절실한 사회적 연구 주제"라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및 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출근길 승차 시위를 하고 있다. © News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및 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출근길 승차 시위를 하고 있다. © News1
나 교수는 이 계획서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언급했다. 그는 "이들(2030 세대)의 지지를 업고 부상한 30대 정치인은 '청년 정치'가 줄법한 창조적 신선함 대신 '모든 할당제 폐지',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다"고 꼬집었다.

동시에 이 대표가 최근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대해서 남긴 발언도 비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 요원 등을 적극 투입해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에 대해 나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기득권 보호를 위해 한창 채비 중인 서울의 경찰 공권력 개입을 강하게 요청했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나 절박함이 '나'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할 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축적된 부당함에 대해 제도가 개입해 '내' 눈앞의 이익에 영향을 주려 할 때, 이들의 공정감각은 사회나 정부 혹은 기득권이 아니라, 그간의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친다"고 했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연세대 재학생들이 수업권 방해를 이유로 청소 노동자들이 속한 민노총을 소송한 것과 같은 사안이라는 게 나 교수의 주장이다.

나 교수는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다. 청소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 온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어떤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했다.

또 "그 눈앞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떠한 거름(filtering)도 없이 '에브리타임'에 쏟아내는 혐오와 폄훼, 멸시의 언어들은 과연 이곳이 지성을 논할 수 있는 대학이 맞는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은 대학 내 혐오 발화의 온상이자 일부의, 그렇지만 매우 강력하게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표를 자처하는 청년들의 공간"이라고 비난했다.

끝으로 나 교수는 "대학이 이 공간을 방치하고서는 지성의 전당이라 자부할 수 없다. 연세대가 섬김의 리더십(지도력)을 실천하는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없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본 수업을 통해 '에브리타임'이라는 학생들의 일상적 공간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 모색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누리꾼들은 나 교수의 강의 계획서에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역시 배우신 분은 다르다", "나도 수강하고 싶다", "이런 교수님이 있어서 다행", "교수님의 답답함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이런 분이 교수인데 학생은 왜 그러냐", "정작 들어야 할 학생들은 안 들을 것 같다" 등의 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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