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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마석도 형사'는 경찰대 출신이 아니다

[편집자주]

경찰청 © 뉴스1 황덕현 기자
경찰청 © 뉴스1 황덕현 기자

지난해 하반기 경찰청 고위 관계자와 식사를 한 적 있다. 경찰 서열 세번째 계급(치안감)인 그가 평소 간부급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얘기를 들려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 고위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 봤나? 형사 등 일선 경찰관이 주인공이다. 일선을 지휘할 때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일선 경찰관이다. 영화 '범죄도시'의 주인공 마석도 형사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그의 계급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극중 대사 등 정황상 '경위'로 추정된다. 

영화에서 최소 30대 후반은 돼보이는 마석도 형사가 그 나이에 경위라면 경찰대 출신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경찰대생은 졸업과 동시에 순경·경장·경사 등 세 계급을 건너뛰고 경위로 임용되기 때문이다. 마 형사 같은 능력자가 경찰대 졸업 후 20대에 경위를 달고 30대 후반까지 경위로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마 형사의 실존 모델인 윤석호 형사(수사경찰서 강력팀)도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 순경 출신이다. 

순경에서 경위까지는 근속 기준으로 15년 정도 걸린다. 순경 등 일반 출신과 경찰대 출신은 시작점이 다른 셈이다. 마석도 형사처럼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소탕해 큰 실적을 올려도 경찰대 출신이 아니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경위보다 두 계급 높은 경정(경찰서 과장급·시도경찰청 계장급)까지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전국 경찰 경정 가운데 순경 등 일반 출신 비율은 55%로 절반 이상은 된다.

그러나 경정 위 계급으로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과 그 이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총경 이상 경찰관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61.6%이다. 반면 순경 공채 등 일반 출신은 11.9%이다. 군의 '장군'에 해당하는 경찰 경무관 이상 고위직은 순경 출신이 고작 2.3%다. 

주목할 점은 전체 경찰 약 13만명 가운데 순경 출신이 96%, 경찰대 출신이 2.5%정도라는 사실이다. 소수의 경찰대 출신이 고위직을 독점한다는 지적을 과장된 논리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시도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치안 현장 바닥부터 경험을 쌓은 순경 출신들은 현장을 잘 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경위에서 시작한 경찰대 출신 지휘관의 현장 이해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대 불공정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최근 공공연하게 제기한 사람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업무보고 후 "경찰대를 졸업하면 (어떤 시험을 거치지 않고) 경위부터 출발하는데 우리 사회의 불공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와 경찰은 매년 경무관 이상 고위직의 20%를 순경 출신으로 채우기 위해 승진심사 기준을 10월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행안부 산하 경찰국 신설에 일선의 반발이 확산하자 이를 달래기 위한 당근으로 풀이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때가 있다. '경찰대 특혜 발언'이 경찰국 신설에 대한 반발을 물리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 장관 자신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 당근책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전체 경찰관의 수나 일선 경찰관이 사기 진작을 감안하면 순경 출신의 고위직 확대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경찰은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상사의 리더십에 힘이 실린다. 현장을 아는 순경 출신 고위지휘관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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