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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키웠는데 친아들 아니라니”…시험관 아기 유전자 불일치

B형인 부부에서 A형 아들…담당의 "돌연변이니까 걱정 말라"
지난달 유전자 검사 불일치…공소시효 10년, 소송 가능할까

[편집자주]

1996년 시험관 시술 당시 진료 기록. (A씨 제공) 
1996년 시험관 시술 당시 진료 기록. (A씨 제공)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의사 말을 믿은 제 잘못이죠.”

A씨(50대·하남)는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 최근 시험관 시술로 힘들게 얻은 20대 아들의 유전자가 남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A씨는 혹여나 결과가 잘못됐을까 싶어 두 번 더 검사를 의뢰했으나, 친모는 맞지만 친부는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1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26년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얻은 아들의 유전자가 남편과 일치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A씨는 1996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인공수정을 했다가 실패한 뒤 담당의사 B교수의 권유로 시험관 시술을 시도해 아들을 낳았다. A씨 부부는 어렵게 얻은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고, B교수에게 “교수님 덕분에 귀한 아이 얻어서 좋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며 감사를 표해왔다.

A씨는 몇 년 후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전 건강검진에서 충격을 받았다. 부부의 혈액형은 ‘B’형인데 아들은 ‘A’형으로 나온 것이다. 부부가 모두 B형이면 A형 아들이 나오기란 불가능하다.

A씨는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담당의사 B교수에게 연락을 했고, B교수는 해외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기를 낳으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 걱정 말라”고 설명했다. A씨는 소중한 생명을 갖게 해준 B교수의 말을 믿었다.

A씨가 B교수에게 남긴 메시지 내용. A씨는 B교수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B교수는 묵묵부답이었다. (A씨 제공) 
A씨가 B교수에게 남긴 메시지 내용. A씨는 B교수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B교수는 묵묵부답이었다. (A씨 제공) 

하지만 믿음은 깨졌다. 20년 가까이 흐른 후 A씨는 성인이 된 아들에게 혈액형이 다른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자 병원 측에 자료를 요청했다. 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간호사는 “담당의사인 B교수가 퇴직했다”며 다른 의사를 안내했다.

A씨는 현재 산부인과 업무를 맡는 의사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의사는 “제가 개입할 일이 아니다. B교수에게 의견은 전달하도록 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병원을 나온 후 A씨는 B교수에게 “병원 측에 물어봤는데 교수님께 소명 받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말씀하신 돌연변이가 아니라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의료사고일까 불안하네요” 등의 메시지를 수차례 남겼지만, B씨는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했던 A씨는 지난 2월25일 병원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을 제기하면 2주 안에 답변이 온다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답이 없자 A씨는 병원에 직접 전화를 했고, 병원 측은 “병원장과 진료부장이랑 얘기를 해봤지만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환자분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A씨는 “아이가 어릴 때 혈액형이 다른 이유를 설명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성인이 되면 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담당 의사도, 병원도, 어느 누구도 이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결국 A씨는 지난 7월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친모는 맞지만 친부는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A씨는 병원 측의 소명을 듣기 위해 소송도 알아봤지만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공소시효가 아이의 혈액형을 안 날로부터 10년인 탓에 승소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한국소비자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로펌 등 다 문의를 했는데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고만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20년 전 의사 말을 믿었던 게 너무 후회된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고, 상처를 주면서 덮을 생각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뉴스1 취재진은 B교수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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