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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환자에 재수없다고 한 의사" 전단 배포…대법 "명예훼손 아니다"

"의료인 자질·태도, 공공의 이익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단체 대화방·전화 이용 명예훼손 사건도 모두 파기환송

[편집자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2.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2.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대법원이 명예훼손죄 성립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한 판결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표현·언론의 자유를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11월 자신의 어머니가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자 의사가 막말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병원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전단지에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최초 수술을 한 병원에서는 '운이 좋아 (어머니가) 살았다'고 하고 이 병원에서 자신이 수술하다 죽은 게 '재수가 없어 죽었다'는 막말을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또 수술경과 모습이 촬영된 사진도 함께 담겼다.

1심에선 A씨의 혐의를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그러나 2심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 부분만이 유죄로 인정돼 벌금이 50만원으로 줄었다. 2심은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는 점은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부분은 무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전단지를 배포한 행위는 다른 의료소비자에게 피해자의 자질과 태도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전단지는 피고인이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의 유족으로서 담당 의료인인 피해자와 면담하면서 실제 경험한 일과 자신의 주관적 평가를 담고 있다"며 "전단지 내용은 주요 부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인이 환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 감정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것은 의료행위와 밀접한 영역에서 의료인의 자질과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 행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로 공적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법원 3부는 최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내 게시글로 대화방 참여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건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B씨는 2019년 1월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동창을 두고 "내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몇 개월 수감된 적이 있다, 다들 조심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1심과 2심에서 벌금 5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대화방에 적은 내용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로 인해 고등학교 동창 2명이 재산적 피해를 입은 사실에 기초해 피해자와 교류 중인 다른 동창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려는 목적이 포함됐다"며 "채팅(대화)방에 참여한 고등학교 동창들의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 3부는 전화통화를 통해 상대방이 막말과 욕설을 했다는 취지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사건에 대해서도 무죄 취지로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경기 수원시의 한 빌라 관리인인 C씨 부부는 아랫집 거주자와의 전화를 통해 해당 거주자가 누수공사 협조를 대가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막말·욕설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C씨 부부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문제가 되는 발언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잇따라 파기환송된 사건들을 두고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이나 비방의 목적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하고 형법 제310조의 공공의 이익이 문제될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정한 비판마저 처벌해 건전한 여론 형성이나 민주주의의 균형잡힌 발전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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