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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대란·물가급등이 시위로 번질라…유럽 각국, 대응책 마련 부산

獨, 88.2조원 규모 통큰 민생 지원안 발표…스웨덴·프랑스 등도 박차
NYT "전쟁 비용 증가시, 대중들 우크라 지지하는 정부에 등 돌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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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테살로니키의 거리 2022.08.20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거리 2022.08.20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의 대러시아 제제로 인해 전세계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에너지 대란은 악화됐다. 러시아는 자국산 에너지를 무기로 서방의 제재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중단으로 생활고가 직격탄을 맞은 유럽 민심은 싸늘하게 얼어붙었고 4일(현지시간) 각국 정부는 겨울이 오기 전 민심을 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독일, 스웨덴, 체코 등 유럽 각국은 앞다퉈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인플레이션과 에너지가격 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 지원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 90%를 수입했는데 수입 물량 가운데 40%를 러시아에 의존했다. EU는 오는 12월부터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전면 금지를 목표로 점진적으로 의존도를 낮추기로 합의했다.

그 가운데 독일은 이날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인플레이션 완화방안 패키지를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 정부는 18시간 밤샘 마라톤협상 끝에 650억유로(약 88조2000억원) 규모 3차 인플레이션 부담완화 패키지를 채택해 발표했다.

앞서 1,2차 지원 패키지까지 포함하면 독일 정부의 지원규모는 전체 950억유로(약 129조원)에 달한다. 독일 정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평시보다 많은 이익을 낸 에너지기업들의 초과이익에 대해서도 과세하기로 합의했다. 또 전력가격 급등에 따른 가계 부담 완화 차 전기료 제동장치를 도입해 기본 사용 범위까지는 특별히 인하한 요금을 적용키로 했다.

이날 독일 정부의 3차 패키지 발표는 앞서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이 독일과 연결된 노르트스트림1 파이프라인을 통한 가스 공급을 무기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가스프롬은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만 파이프라인 유지보수를 위해 잠정 폐쇄할 예정이었는데 보수 중 누출이 발생했다며 지난 2일 돌연 폐쇄 기간을 무기한 연장해버렸다.

특히 가스프롬이 무기한 연장을 발표한 이날은 세계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모여 러시아 원유·석유제품에 대한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이에 대해 EU 측은 가스프롬의 이번 조치에 다분히 '정치적' 동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NYT는 전했다.

숄츠 총리는 이날 3차 패키지 발표를 하며 "러시아는 더 이상 신뢰할 만한 에너지 공급국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현실의 일부"라며 "우리는 모두 러시아 전쟁의 결과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불신임투표에서 기사회생한 지 하루만인 전날(3일) 수만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에너지가격 급등에 분노를 표출했다. 극우 및 저변 단체들이 주도한 이번 시위에서는 체코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EU 회원국 가입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경제난에 반발하는 시위가 예고돼있다. 일부 노조들은 이번 정부 조치가 저소득층이 직면한 문제를 경감해주지 못할 경우 항의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베를린 거주 빈센트 사이퍼(21)는 경제적 불안을 안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결국 러시아와 화애를 요구하는 단체들과 연대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잉글랜드 북동부 벨벌리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해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제임스 올콕(36)은 "앞으로 2~3주간 정부 도움이 없다면 내년 이맘때쯤은 가게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유력 차기 영국 총리로 꼽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이날 "제가 만일 당선된다면 치솟는 에너지가격에 대처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정부는 내년 3월까지 전력 공급 물량을 확보하는 에너지업체들을 돕기 위해 230억달러(약 31조 6020억원) 상당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카엘 담버그 재무장관은 "이러한 지원이 없으면 일부 전기 공급자는 기술적 파산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와 산업계는 지난 여름 동안 예상치보다는 많은 천연가스를 비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최대 규모의 에너지 보존 캠페인에 돌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급증하는 가계의 에너지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260억달러(약 35조7292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아울러 정부는 각 기업체에 '에너지 절약 홍보대사'를 지명할 것과 그들의 전력 소비 감축 계획을 정부에게 공유해 달라고 요구했다.

NYT는 "시위들은 에너지 위기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정치적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유럽 지도자들이 갖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많은 사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대중의 지지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정부에 등을 돌릴 수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유럽의 많은 지역에 높은 에너지가격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불하는 대가를 고려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저희는 상황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 "우크라이나에서도 물가가 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죽고 있다. 여러분이 자신의 은행계좌나 주머니에서 돈을 세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사상자를 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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