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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위기가구] ⑤이러려고 세금 냈나…'고립 중년남'을 위한 나라는 없다

1인가구 지원 '청년·노년층' 위주…중장년 위한 프로그램 전무
지속적인 일자리 정책, 돌봄연계 사회 관계망 회복 손길 필요

[편집자주]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이 보내는 위기 신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여전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모두 끌어안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합니다. 뉴스1은 절벽으로 내몰린 위기가구를 놓치지 않기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를 찾아보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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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던 40대 남성 A씨의 삶은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배우자와 갈라서며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지난 5월 결국 위장출혈과 급성 간부전으로 인해 쓰러진 그를 발견한 것은 전도를 위해 집을 찾았던 인근 교회의 목사였다. 119에 이송돼 목숨을 구했지만 간부전의 후유증으로 두눈의 시력이 거의 소실돼 앞을 잘 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죽음은 비껴갔지만 직장도 잃고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A씨를 도와줄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 청년·노인 중심…상대적 사각지대 놓인 중장년 1인가구

A씨의 사례를 담당했던 구 공무원은 "수급자를 신청할 수는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아무 지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65세가 넘은 분이라면 노인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고 장애인이라면 활동지원서비스가 가능한데 65세 이상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그동안 복지 대상자도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도봉구 돌봄SOS센터의 지원을 통해 A씨는 '예외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긴급돌봄을 받을 수 있었지만 1인가구 관련 지원 정책이 청년과 노년층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 중장년층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 한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공무원 B씨도 위기가구 발굴사례와 1인가구에 대해 이야기하다 중장년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년 1인가구 중 특히 남자 분들이 수급자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차라리 노령층의 경우에는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중장년층의 경우 돌봄서비스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B씨는 중장년층의 경우 이혼 등 가정의 해체,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이유로 1인가구가 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의 경우 사회적 고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런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모습. (뉴스1DB) © News1 김진환 기자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모습. (뉴스1DB) © News1 김진환 기자

중장년 1인가구의 경우 청년 1인가구와 노년 1인가구가 겪는 문제들을 동시에 겪고 있지만 이들 중 위험가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원을 연계하는 제도는 미비하다는 지적은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주거지원 정책의 경우 정부의 임대주택 지원이 청년, 신혼부부, 노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중장년층은 정부가 지원하는 주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일자리 정책에서도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중장년 맞춤 일자리를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노년 일자리 지원이 중심이 되고 있다.

◇ 외로움 느끼는 비중 높아…고립 속 홀로 죽음 맞이해

이런 상황에서 중장년 1인가구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5월 발표한 '서울시 1인가구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울의 1인가구는 139만명으로 전체가구 중 34.9%를 차지했으며 그중 중장년층은 32.7%였다.

이 실태조사에서 1인가구 13.6%가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몸이 아파 도움이 필요할 때, 갑자기 많은 돈을 빌려야 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응답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중장년의 경우 사회적 고립의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이었다. 중장년 1인가구 15.2%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청년(13.1%) 노년(12.0%)보다 그 비율이 높았다. 더욱이 중장년 1인가구의 경우 외로움을 느끼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조사에서 중장년 1인가구 중 자신을 외롭다고 인식하고 있는 비중은 62.1%였다.

이외에도 중장년 1인가구의 48.6%는 이혼을, 11.1%는 사별을 경험한 전력이 있었다. 또 중장년의 경우 차별, 무시, 편견을 경험한 비율이 청년이나 노년층에 비해 높았으며 혼자 살아가며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았다.

중장년 1인가구가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속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 올해 8월까지 722명의 무연고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망자 중 39.1%(282명)가 중장년이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자립 위한 경제적 지원과 사회관계 회복 필요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들은 중장년 1인가구의 문제가 방치될 경우 결국 노인 빈곤, 고독사 문제로 번지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이 자립하고 사회관계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중장년 1인가구 문제를 연구해온 송민혜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센터 박사는 최근에는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지원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1인가구지원센터나 건강가정진흥원의 프로그램을 보면 아직까지는 청년들 위주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중장년 세대들의 경우 디지털 관련 역량이 낮아 홈페이지에 접근한다거나 앱을 이용해 신청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들의 정보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들의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송 박사는 "중장년의 경우 경제적으로 취약해지면 사회적 관계가 단절이 되는 인과관계를 보이고 있다"며 1인가구 관련 정책 중 경제적 지원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노인일자리 지원처럼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정책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장년 1인가구가 밀집한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충근 관악공동행동 사무처장은 "1인 중장년 가구는 본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찾을 의욕을 상실한 분이 많다"며 이들을 고립된 생활에서 끄집어내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곽 사무처장은 중장년 1인가구들이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 놓고 이야기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밀집해 거주하는 지역 현장에 상담과 복지 연계를 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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