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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도어스테핑 없는 용산, 윤석열 후보 마크맨의 소회

[편집자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2월5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 해오름노을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2.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2월5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 해오름노을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2.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나의 지난 겨울은 온통 윤석열이었다. 첫 눈과 새해를 모두 윤석열 대선 후보의 야외 일정 현장에서 맞았다. 매일 바닥에 앉아 후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뒤 질문을 쏟아냈다. 즉흥 질답에 임하는 '정치 신인'의 말투와 시선, 답변 내용과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졌고 이를 목격하는 건 꽤나 신선한 일이었다.

대선이 가까워오면 당에서는 즉석 문답 리스크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후보 옆에 선 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을 막고, 질문을 끊으며 후보를 이동시키고, 질문을 가로채 대신 답변할 때도 있다. 하지만 현장 기자들은 등 돌려 나가는 후보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 외친다.

정치 입문 반년 남짓한 대선 후보는 조마조마해하는 대변인과 당직자들을 뒤로 하고 기자들과 최대한 소통하려 했다. 되돌아와 바닥에 앉은 기자들을 내려다보며 말하기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당 관계자를 가로막고는 지나치리만큼 솔직한 답변을 내주기도 했다.

국민의힘 당사 1층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 드디어 나타난 후보에게 바싹 붙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경호원이 끌어안으며 제지했는데 후보는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렸다. 몸이 자유로워진 내게 답을 한 뒤 떠났다.

3월10일 후보 곁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갑자기 경찰에서 대통령경호처 소속으로 싹 바뀌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당선인이 되었고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 이젠 가벽 뒤 보이지 않는 대통령이 됐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후보와 대통령은 다르다"며 웃는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가원수와 100석 남짓한 야당 소속 후보의 위상은 물론 다르다. 다만 국민이 경제도, 정치도 모르는 검찰 출신 대통령을 만들어낸 이유를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자실을 대통령 집무실과 같은 공간에 그것도 1층에 설치한 것은 탈권위적 소통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편으로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때 그 현장의 그 후보라면 이런 결단을 내릴 만 했다. 그런데 시행 반 년만에 가벽을 세우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무거워야 하는데 도어스테핑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끌려다니게 된다. 그 변수를 제거하지 못하면 도어스테핑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정치 공방을 주고받기 보다는 국정 현안을 언론과 함께 논하는 국정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지금은 그게 힘들다. 그래서 중단한다'는 게 대통령실 입장이다. 대통령경호처가 도어스테핑 중단과 특정 기자 징계를 강하게 주장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국민이 '정치 신인'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바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3월 유권자들은 과거 대통령들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나섰을 것이며 이제까지 우리 정치사에선 없었던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기다렸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상의 소통'을 내세우며 용산에 발을 디뎠다. 반 년 만에 권위의 장막 뒤 '용산시대 2.0'을 여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빈틈없이 세워진 가벽 앞에서 이유 모를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 과연 대통령실 출입기자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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