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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을 가장해 병역 면탈을 도모한 이들이 구속되면서 뇌전증 환자들이 상처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편견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병역 판정 기준이 불합리하게 바뀌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과거 간질로 불렸으나 2012년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질환명이 바뀐 바 있다. 꾀병이라고 오해되지 않도록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며, 환자들에게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복잡하게 얽힌 신경에 일종의 '합선'…대부분 정상적 일상 가능
11일 김성훈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에 따르면 뇌전증은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 수천억 개의 뇌신경 세포 중 일부가 짧은 시간 과도한 전류를 발생시켜 경련이나 의식소실 등 다양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만성질환이다.
복잡하게 얽힌 신경 네트워크에 '합선'이 생기는 셈으로 30초~1분 내외의 발작이 일어난다. 다만 발작은 뇌전증 환자한테만 나타나는 증상은 아니라 발작을 판별하는 게 중요하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은 굉장히 다양하다.
발작을 유발할 건강상 요인이 마땅히 없는데도 발작이 일어날 때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2회 이상의 발작이 나타나는 경우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한 뇌전증 환자군으로 분류된다.
발작의 양상은 환자마다 다르다. 신체 일부 또는 전신 경련이 나거나 뻣뻣해질 수 있다. 고장이 난 인형처럼 특정 행동을 반복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던 도중 1~2분씩 멍하게 있는 것처럼 발작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기준 건강보험으로 뇌전증을 치료받고 있는 환자는 약 30만명으로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환자 수를 합할 경우 약 37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만~3만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나온다. 신경계 질환 중 치매·뇌졸중 다음으로 환자가 많다.
MRI 기기. (자료사진.) © News1 박영래 기자 |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 고흐도 환자였다…"환자에게 격려 필요"
뇌전증을 진단하려면 우선 발작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얼마나 지속됐는지, 환자가 기억했는지 등에 대한 문진한다. 그 이후 환자 증상에 따라 자기공명영상(MRI), 뇌파검사(EEG), 양전차 방출 단층촬영법(PET) 검사, 24시간 동영상 뇌파검사 등을 한다.
다양한 검사를 여러 차례 해야 진단할 수 있다. 이번 병역 비리도 뇌전증을 판별해내기 힘들다는 점을 악용했다. 뇌전증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 의사가 환자의 증상 및 관련 상황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
치료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건 항경련제의 복용이다. 김성훈 교수에 따르면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는 뇌전증 환자들의 약 60%는 발작 없이 생활하고 있다. 약 20%만 수개월의 1회 정도 발작을 보인다. 일상생활의 지장을 초래한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약을 먹으면서 경련이 2~3년 이상 없는 경우, 뇌파가 안정되는 경우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항경련제 복용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 중단한 뒤에도 수년간 증상이 없다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
뇌전증은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는 흔한 질병으로, 일부 중증 난치성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상적인 일상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뇌전증을 앓은 사람 중에서는 소크라테스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미술가 고흐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많지 않고, 위축돼 있다. 대한뇌전증학회 연구에 따르면 환자 10명 중 3명은 뇌전증으로 인해 사회적 낙인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고 환자의 44%는 취업, 교육, 대인관계 등에 있어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번 일로 차별이 심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뇌전증학회는 "철저한 수사로 범죄행위를 일으킨 사람들은 엄중히 처벌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환자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뇌전증 환자는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절한 기준을 통해 병역면제가 이뤄져 왔다. 병역 비리 방지를 목적으로 역차별을 조장시킬 수 있는 병역면제 기준 강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환자와 환자 가족 권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인식개선, 재활복지 사업들을 하는 한국뇌전증협회는 국가적 차원에서 뇌전증 환자를 관리, 보호하는 취지로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뇌전증관리지원법) 입법추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협회 회장인 김흥동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교수는 "환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조속히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