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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혁신의 정의

[편집자주]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 개막이 사흘 앞둔 2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2023.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 개막이 사흘 앞둔 2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2023.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D? F?”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3’이 막을 내리던 지난 8일(현지시간), 국내 취재진 사이에선 두 개의 알파벳을 놓고 여러번 되묻는 목소리가 나왔다. 행사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발표한 ‘세계 혁신순위’에서 한국이 받은 성적표 때문이었다.

17개 분야 40개 지표를 점수로 매긴 이 평가에서 한국은 다양성 측면에서 D, 사이버보안 지표에선 F로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총점에서도 한국(3157점)은 공동 1위인 핀란드와 미국(3744점)에 한참 못 미쳤고, 에스토니아(3725점)·노르웨이(3705점) 등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으며 26위에 그쳤다.

CTA가 이 순위를 처음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2018년 한국은 20위였고, 2019년에는 24위로 떨어졌다. 2020~2022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해당 통계가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위가 점점 하락 중인 상황이다. 

올해 CES에 삼성전자·LG전자, SK, HD현대 등 대기업부터 중견·중소기업까지 550여개 기업이 참여하며 세계 2위 참가국으로 발돋움한 것과는 상반된 현상이다. 전시관을 종횡무진 누빈 한국 기업의 활약을 직접 목도한 입장에선 더욱 의아한 결과였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혁신 순위는 기업들이 규모와 업종을 불문하고 판을 뒤엎는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만한 내실이 나라 산업 전반에 갖춰져 있는지를 평가한다. 전시관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별개로, 개별 나라에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사업이나 기업이 활발히 싹을 틔울 수 있는 산업 토양이 갖춰졌는지가 주요 기준이다. 

올해 다양성에서 발목이 잡혔다면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세금 친화 정책, 유니콘 배출 등의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높은 세율, 신생 사업마다 따라붙는 촘촘한 규제 등이 혁신의 걸림돌로 지목됐다.  

'혁신의 정의'가 변한 셈이다. TV나 워크맨, VCR 등 히트상품만 들고 나오면 혁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전과는 산업의 판도가 달라졌다는 뜻으로도 읽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제품보다 '초연결'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상호 경쟁을 넘어 외부와의 협업을 강조한 삼성전자, LG전자 부스의 모습은 바뀐 경기장에 적응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로 비쳤다.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고집하다 세계 시장의 흐름을 놓치며 '갈라파고스화' 됐던 소니가 2년 연속 주력 사업보다 모빌리티 혁신을 전면에 앞세운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혁신의 정의는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건 세계 시장에 나선 이상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기업들은 이미 변화의 한발을 뗐다. 남은 건 규제를 개혁하고 혁신 기술과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지원책을 조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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