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기자의 눈] 돈줄 마른 K바이오…'한 방' 집착 말고 가볍게 뛰자

샌프란시스코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취재기
"작더라도 초기 개발단계서 꾸준히 거래 만들어내야 침체기 극복"

[편집자주]

 

우울한 경기 침체 전망 때문이었을까.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행사는 우박을 동반한 변덕스러운 날씨로 연일 잿빛 풍경 아래 진행됐다. 

수년째 지속된 코로나19로 헬스케어 업종에 대한 관심과 정부 지원은 전보다 증가했지만, 실상은 최악이다. 바이오텍들은 기나긴 개발 기간을 버텨줄 자금을 확보할 길이 막막해졌고, 많은 회사들이 말 그대로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마이크 가이토 JP모건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사업 부문장도 이번 개막식에서 "올해 역시 도전적인 상황"이라며 "수 년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업공개(IPO) 활동이 없다"고 차가운 시장 분위기를 대변했다.

전세계 제약·바이오산업의 변방인 한국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만한 비장의 신약 후보물질이 있어도 투자를 받지 못해 매장될 처지나 다름없다. 

이번 행사에서 만난 국내 벤처캐피탈(VC) 관계자들은 투자했던 초기 단계 바이오텍들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면 피하고, 바람이 불면 우선 낮게 엎드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얘기였다.

이들은 선택과 집중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국내 바이오텍들에게 하나 하나 중요하지 않은 파이프라인이 없지 않겠지만, 글로벌 제약사와 임상 단계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논하기에 앞서 성에 안 차더라도 작은 거래를 지속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한 VC 관계자는 "큰 이익을 보려고 참다가 몇 년 안에 정말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가져갈 파이프라인 하나만 남겨두고 초기 단계에서 조기 계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이번 행사가 열린 세인트프란시스호텔 인근에서는 각국의 소규모 바이오텍들 간의 만남과 쇼케이스가 적지 않게 벌어졌다. 각자 가진 기술을 소개하고, 협업을 통해 경기 침체의 파도를 넘어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빅파마와의 '빅 딜' 한 방에 치우친 국내 바이오텍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투자 전문가들은 이러한 작은 협력들이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고, 인수합병(M&A) 등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고 조언한다.

아직까지 초기 투자를 받지 못한 국내 바이오텍들도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살을 베어 주고, 상대의 뼈를 자른다'(육참골단·肉斬骨斷)는 고사성어처럼 글로벌 혁신 신약 창출의 그날을 위해 파이프라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