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중국의 위협' 언급한 김정은의 속내…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외교

폼페이오 전 美 국무, 회고록서 김정은과의 '비핵화 협상' 일화 공개
'이익에 초점' 필요한 외교 전략 총동원한 北 면모 확인

[편집자주]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미 국무부 제공) 2018.10.8/뉴스1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미 국무부 제공) 2018.10.8/뉴스1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회고록을 통해 공개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의 일화는 복잡다단한 정세에서 '이익'에 초점을 맞춘 북한식 외교 전략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발간된 회고록에서 지난 2018년 3월 북한을 찾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만났을 때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는 북한의 전향적 태도로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막 시작될 무렵으로, 둘 역시 처음 대면한 자리였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중국은 우리에게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 김 총비서가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라는 폼페이오 전 장관의 언급에 "중국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 총비서는 이같은 반응을 보인 뒤 오히려 "중국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원하는 것이며, 이는 중국이 한반도를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처럼 다루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자신의 '진단'도 폼페이오 전 장관에게 밝혔다는 것이 회고록의 내용이다.

폼페이오 전 장관이 북미 협상이라는 역사적인 '경험'을 강조하기 위해 회고록에서 일부 장면을 다소 과장되게 묘사한 측면은 있을 수 있다. 또 일방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회고록에 묘사된 모든 내용은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회고록에 기술된 김 총비서의 주장의 논리와 결론은 그간 중국과는 항구적인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미국은 '증오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의 외교 전략이 적어도 2018년에는 거의 정반대 수준으로 달랐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향후 북한의 행동을 예상하기 위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 당시 북한은 '북핵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이를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협상 카드의 가치를 가장 높게 끌어올려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인 셈이다.

다만 북한은 당시 중국과의 강한 밀착 행보를 기반으로 전례없는 수준의 북핵 협상에 나선 것이기도 했다. 북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총비서가 중국을 찾아 시진핑 주석과 만나는 '이벤트'를 꾸준히 연출하면서다. 이를 두고 북한이 중국에 '사전 보고'를 하고 '승인'을 받는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폼페이오 전 장관의 회고록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표면적으로 보여 준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전략과 노림수로 협상에 임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김 총비서가 '중국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중국의 '위협'을 언급한 것은 상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가 중국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다루는 방식을 우려하며 이같은 언급을 내놓은 것은 더 주목할 언급이다. 이는 김 총비서의 당시 중국에 대한 평가가 단기적이거나 당시 한반도 정세에만 천착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 총비서가 당시 중국과 가장 대립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부터 수십년간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한 미국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인상적이다.

일각에서는 김 총비서의 이같은 발언이 외교적 전략에 따른 것일뿐 그의 '솔직한 속내'와는 다를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미국을 상대로 '최대의 협상'을 해야 하는 김 총비서의 입장에서 미국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중국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크게 진전됐던 2018년 1년 동안 북한의 '뒷배'로서 역할을 하면서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에는 이같은 북한의 '협상 전략'을 이미 공유받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반면 김 총비서의 당시 발언이 중국과의 사전 교감이 전혀 없는 독자적 판단과 전략 구사의 결과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오랜 기간 '혈맹'으로 평가받았지만, 사실 대(對)한반도 영향력을 높이려는 중국과, 국력의 차이로 인해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우려는 큰틀에서 늘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에서다.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관계 개선, 결과적으로는 수교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2018년 당시 실제 북미가 '연락사무소 개설' 등 수교로 가는 절차를 합의했다는 점도 김 총비서의 발언이 '전략'보다는 속내를 털어놓은 것에 가까울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제제재 해제라는 단기적 숙원사업 해결 말고도,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을 막기 위한 방파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전례없는 수준의 북미 협상에 깊이 관여한 미국 전 고위 당국자의 '증언'은 이같은 북한의 복잡한 외교전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도 "북한은 다른 나라들보다 '생존'에 집중한 전략을 구사하는 나라"라며 "일부에서 구축한 '막 나가는' 북한의 이미지에는 오류가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 전력을 강화해도 북한이 정세를 '뒤엎어버리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대 한반도 영향력이 유지되는 것이 협상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된 현 정세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향후 협상을 위한 '카드 축적'을 위한 방향으로 언젠가 상황을'관리'를 하려 나설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