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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vs 불호, '정이'도 엇갈린 평가…한국형 SF라는 어려운 길 [N초점]

'승리호'·'서복'·'외계+인'까지…한국형 SF 한계 극복하려면

[편집자주]

'정이' 스틸 컷
'정이' 스틸 컷
성공적인 '한국형 SF'는 나올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가 지난 20일 공개된 가운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호불호가 갈린 한국 SF 영화는 '정이' 뿐만이 아니었다. '정이'와 그 이전에 개봉했던 여러 작품들이 거쳐 온 '한국형 SF' 장르의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다.

◇ 뇌복제, AI 다룬 '정이', 엇갈린 반응들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셀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배우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며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을 성공시킨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정이'는 공개 하루 만에 OTT 플랫폼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넷플릭스 전세계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이어 지난 24일까지 같은 부문에서 나흘 연속 정상을 유지했으며 25일과 26일에도 전쟁 영화 '나르비크'에 밀리기는 했지만, 상위권인 2위 자리를 지켰다.
'정이' 포스터
'정이' 포스터
이처럼 공개 초반 내고 있는 성적만 보면 '정이'를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의 실질적인 평가는 다소 엇갈리고 있다. 국내 영화 추천 서비스 키노라이츠에서 27일 기준 '정이'의 평점 지수는 37.1%로 집계됐다. 평점 지수는 100%에 가까울수록 유저들의 선호도가 높게 나오는데, 인기가 있는 영화라면 적어도 66% 이상을 나타내게 된다. 다른 영화 평가 서비스 왓챠피디아 이용자 평점에서도 '정이'는 5점 만점에 평균 2.3점을 기록했다. 해외의 관객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미국의 영화 비평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정이'의 신선도 지수는 50%이며 10점 만점인 IMDB 평균 별점에서는 5.4를 기록 중이다. 이처럼 '정이'는 국내외 여러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린 탓이다.

호의적인 관객들은 "뻔한 신파일 수 있지만 눈물 흘리며 봤다" "감정선 빌드업이 좋았다" "그동안 나온 국산 SF 중 최고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비판적인 관객들은 "비주얼과 CG 효과는 기대이상이지만 클리셰 가득한 스토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SF라는 장르를 이해하지 못했다" 등의 혹평을 하기도 했다.

◇ 정점 다다른 한국 영화의 미개척지, SF

최근 들어 '정이'처럼 '한국형 SF'라는 이름을 걸고 개봉하는 영화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강점만큼이나 한계점이 뚜렷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던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는 한국 SF영화의 진일보한 CG기술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평이한 이야기, 클리셰적인 설정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쌍천만 연출가' 최동훈 감독이 지난 여름 내놓은 SF 액션 영화 '외계+인' 1부는 흥행에 실패했다. 한때 '천만 예상작'으로까지 꼽혔던 이 영화는 누적관객 153만8504명을 동원한 후 '산만하다'는 지적 속에 박스오피스에서 씁쓸하게 퇴장했다. 2018년 개봉했던 '인랑'이나 팬데믹 시기에 공개된 영화 '서복' 등의 작품들도 '승리호'나 '외계+인' 1부와 전반적으로 비슷한 평을 받았다.

SF 장르는 실화 바탕의 드라마나 액션, 스릴러 등의 장르가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미개척지다. 일각에서는 90년대 멜로와 코미디 장르가 흥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스릴러나 드라마 쪽으로 유행이 옮겨온 것처럼, 한국 영화의 새로운 주류를 형성할 장르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장르로 꼽히는 것이 SF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인랑'이나 '승리호' '서복' '외계+인' '정이'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승리호' '서복' 포스터
'승리호' '서복' 포스터
이제 막 도전하고 있는 장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은 '차별성 없는 이야기'다.

윤성은 평론가는 "사이버펑크 장르에 대한 레퍼런스가 없는 관객들에게는 '정이'가 새로운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의 계급이라던가 전뇌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 등을 담은 주제는 이미 외국 영화에도 많이 나왔던 것들이다, 외국 영화 레퍼런스가 많은 관객들에게는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이'는 기존에 있었던 사이버펑크 장르물에서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시각적으로 그것들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평했다.

'한국형 SF' 영화들이 전통적인 SF 장르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양경미 평론가는 "우리나라 영화는 사회적 문제 혹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히 우위에 있지만 SF 장르에 적합한 이야기를 담기에는 시나리오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다"며 "SF가 갖고 있는 장르적인 특성과 내용이 안 맞아서 관객들이 '왜 따로 놀고 있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SF 장르 영화를 하려고 할 때 과학적인 근거와 담고 싶은 이야기의 아귀가 맞아서 먼 미래 얘기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그게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뻔한 디스토피아나 AI 코드만 가지고 이야기를 맞춰가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 한국형 SF 영화에 필요한 것…'방향성'과 '작가'

올해도 유명 감독들이 연출한 SF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김용화 감독의 '더 문'과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다. '더 문'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남자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지구의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설경구, 도경수, 김희애 등이 주연을 맡았다. '원더랜드'는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과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박보검, 수지, 정유미, 최우식, 탕웨이 등이 출연했다. 이미 촬영을 마친 두 영화가 앞서 공개된 '한국형 SF' 영화들의 한계점을 극복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윤성은 평론가는 SF 영화가 크게 두 가지 방향점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중적이고 익숙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보여주는 방식과 이야기 그 자체로 승부를 보는 방식이다.
영화 '원더랜드' 티저 포스터
영화 '원더랜드' 티저 포스터
윤 평론가는 "'아바타: 물의 길'은 이야기가 굉장히 단순하고 사실상 1편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볼거리가 다른 SF 영화와 차별화 됐다, 너무 다른 시각적 세계를 구현해냈고 그것이 통해 성공했다, '아바타' 식으로 가는 SF 영화가 있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만으로 갈 수 있는 영화도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던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들었던 SF 영화들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성공했다"면서 "앞으로 나올 한국형 SF 영화들은 두 개의 방향성 중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경미 평론가는 '한국형 SF' 장르 영화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SF장르에 특화된 시나리오 작가들을 더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평론가는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시나리오다, 우리나라는 감독이 각본까지 쓰려고 하는 풍토가 있는데 감독도 쓸 수 있는 영역의 한계가 있다, 매번 같은 감독이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 본들 새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며 "SF는 젊은 층에 마니아도 '덕후'도 많은 장르다, 그런 사람들이 쓰는 글을 개발해 영화화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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