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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글로벌 삼국지]'오래된 유령' 배타적 민족주의 몰아내야

"올해 한중일 상징 한자어 '화합'… 상호 인식 개선 시급"

[편집자주] 백범흠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차장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연방행정원 행정학석사, 프랑크푸르트대 정치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했으며, 세계경제외교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외무고시(27회) 합격 후 주중국대사관 총영사, 주다롄영사사무소장,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 등을 역임했으며, 중국청년정치대학과 연세대에서 객원교수를 역임 또는 재임 중이다. '미중 신냉전과 한국' '중국' '한중일 4000년' 등 7권의 저서를 낸 한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 중 하나다.

백범흠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 사무차장.(TCS 제공)
한반도는 중국과 높은 산과 강으로 연(連)해 있고, 얕은 바다 서해로 연결돼 있다. 일본과는 수많은 섬들을 사이에 두고 대한해협이란 좁은 바다로 이어져 있다. 그야말로 한중일 3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 관계다.

적도에서 출발한 바닷물은 필리핀해와 동중국해를 거쳐 서해를 거슬러 올라가 랴오둥 반도에 도달한다. 그 바닷물이 중국 해안을 거쳐 내려와 제주도를 휘감고 일본 규슈섬에서 북동쪽으로 흘러 오호츠크해로 향한다. 영산강 하구 영암에서 배를 띄우고 키를 오른쪽으로 잡으면 중국 저장성 닝보, 왼쪽으로 잡으면 일본 규슈섬 후쿠오카로 향한다. 옛날부터 바다는 물고기 떼를 나르고, 사람과 상품, 문명을 실어 날랐다. 한반도와 중국, 일본은 육지와 바다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렇듯 한중일 3국은 지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으며, 어디로 이사 갈 수조차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국제기구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은 지난 1월 3국 국민이 참가한 온라인 투표를 통해 '3국 관계를 상징하는 2023년 한자어'로 '화합'(和合)을 선정했다. 이는 현 시점에서 한중일 3국에 가장 필요한 게 '화합'임을 말해준다. 최근 급속도로 악화된 한중일 국민 상호 간 인식을 개선하란 3국 국민들의 강력한 주문이 반영된 것이다.

지난 세기 말 일본과 한국이 차례차례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한중일 3국 간 인적·물적 교류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한중일 3국 간 교류 증대는 3국 모두에 큰 도움이 됐다. 짧은 기간 한국은 유수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했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역시 한국,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상당한 정치·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심화된 미중 갈등 와중에 지난 2019년 말 발생해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한중일 3국 간 교류·협력을 위축시키고 갈등을 심화시켰다. 한중일을 포함한 세계는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기존 규범과 질서가 무너진 정치·경제적 카오스 속에서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하는 '뉴노멀 시대'를 맞이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어디로 가야 항구를 발견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풍랑이 들이치는 캄캄한 바다 위 흔들리는 배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세계 모든 나라가 스스로 알아서 항구의 불빛을 찾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TCS 제공)
(TCS 제공)

TCS는 한중일 3국 정부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1년 9월 서울 광화문에 설립됐다. TCS는 벨기에 브뤼셀 소재 유럽연합(EU)이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자리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한중일 3국 관계 발전 정도를 반영하듯 제도화 정도나 규모, 존재감은 EU나 ASEAN, EAEU에 훨씬 못 미친다.

TCS는 한중일 3국 출신 3명의 총장단, 4명의 부장단, 그리고 30여명의 일반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TCS는 한국, 중국, 일본 국민이 모여 함께 일하는 소규모 '한중일 공동체'다. TCS 직원 다수가 모국어와 함께 업무 언어인 영어, 그리고 모국어 외 한중일 3국 언어 중 1~2개를 구사할 수 있다.

TCS 사무국에선 한국인 정다연, 중국인 왕위에, 일본인 이다 사에코가 호흡을 맞춰 함께 일한다. 이들은 대화시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번갈아 사용한다. 2년 임기 사무총장(그리고 2명의 사무차장)도 한중일 3국 정부가 번갈아 파견한다. 광화문 새문안 교회 건물 앞 에스타워 20층에 자리한 TCS 사무국은 세계적 컨설팅 회사나 법률회사 같은 느낌을 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에스타워 20층에 내리면 바로 태극기, 오성홍기, 일장기 등 한중일 세 나라의 대형 국기를 마주한다.

한중일은 1999년부터 정기적으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해왔다. 1999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주룽지 중국 총리,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별도 조찬 모임을 가진 게 계기가 됐다.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한 갈등과 대립이 일반화된 지금과 달리 당시는 지역 통합과 세계화의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조찬 모임이 2008년부턴 매년 3국에서 교대로 주최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로 발전했다.

이에 힘입어 TCS가 2011년 9월 서울 광화문에 창설됐다. TCS 창설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제안에 따른 것이다. 한중일 간 역사적 화해와 함께 동아시아공동체 창설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상주의 정치인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동의했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적극 지지했다.

세 나라 모두 TCS를 유치하고 싶어 했지만, 베이징과 도쿄의 가운데 위치한 한국(서울)이 TCS를 유치했다. TCS의 목표는 한중일 3국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 번영 △문화적 공통성 유지와 발전 등 3가지다. TCS는 한중일 간 느슨한 협력기구지만 제도화가 고도화되면, 결국 EU와 같은 진정한 의미의 다자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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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S의 기능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3국 정상회의와 각 분야 3국 장관회의 등을 지원하는 기능, 둘째는 3국 관계 증진을 위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능이다. TCS는 오늘날 한중일 3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민 상호 간 인식 저하 내지 악화라고 판단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상호 이해 제고와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TCS는 매년 2월을 '한중일 청년의 달'로 지정했다. TCS는 올 2월엔 청년교류네트워크(TYEN)를 창설하는 한편, 서울·도쿄 등에서 TYEN과 연계해 청년대사프로그램(YAP), 한중일 3국 언어 스피치 콘테스트, 캠퍼스 아시아 동문 워크숍 등을 개최했다.

TYEN 창설식엔 윤덕민 주일대사, 쿵쉬안유 주일 중국대사와 다케이 슌스케 일본 외무성 국무상이 참석, 축사를 통해 한중일 3국 청년세대의 교류 확대가 한중일 관계 발전의 기초임을 역설했다. 한중일 간 교류와 협력이 지속 강화되면 언젠간 TCS도 고도로 제도화된 동아시아 국제기구로 발전해 있을지 모른다.

TCS의 목표인 항구적 평화와 공동 번영, 문화적 공통성 유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한중일 3국은 정상회의 재개와 함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을 지속 증대,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성장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중일 3국 국민 마음속에 숨어 암약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란 오래된 유령을 몰아내야 한다.

한중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3국 국민 모두 열린 마음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3·1절 기념사에서도 밝혔듯, 우리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도 열린 마음으로 획기적으로 발전시켜가야 한다. TCS 사무국이 소재한 한국의 국민들이 한중일 국민들 간 대화 증진, 나아가 화합에 앞장서야 한다.

<백범흠 사무차장 약력>
△현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차장 △현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 정치학사 △독일연방행정원 행정학 석사 △프랑크푸르트대 정치학 석·박사 이수, 경제외교대학 정치학 박사 △강원도 국제관계대사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중국청년정치학원 정치학과 객원교수, 주다롄영사사무소장 △주중국대사관 총영사 △외교부 통상정책총괄과장 △주제네바국제기구대표부 1등서기관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외교부 북핵팀 서기관 △주우즈베키스탄대사관 1등서기관·참사관, 주오스트리아대사관 겸 주빈국제기구대표부 2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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