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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재구성] "창문 열려있어 범행 못 참아"…옆집 할머니 살인범의 변명

살해 이유로 "나쁜 기운을 보내 건강 나빠져" 진술…범행 은폐 시도도
1심 15년→항소심 18년 선고…재판부 "1심 형 가볍고 범행 수법 잔혹"

[편집자주]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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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문만 잘 잠가 놓았어도 죽이지는 않았을텐데…."

살인 혐의로 붙잡힌 50대 A씨가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다. A씨는 2020년 7월2일 부산 동구 한 아파트 2층으로 올라가 복도 창문을 연 뒤 난간으로 내려가 B씨(70대·여)가 사는 집 베란다 창문을 열고 침입했다.

A씨는 미리 준비해간 흉기를 들고 안방에서 TV를 보던 B씨에게 다가갔고, B씨와 마주치자 흉기로 신체 여러 부위를 수십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조사 결과 B씨가 A씨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를 끼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A씨는 이같은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A씨는 같은해 2월부터 5월까지 B씨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 B씨가 자신에게 나쁜 기운을 보내고 부적을 붙여 발뒤꿈치가 골절되는 등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후 A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계속해서 B씨가 나쁜 기운, 이른바 '살'의 기운을 보낸다고 느껴 살해 전 3차례에 걸쳐 B씨가 집에 없는 사이 집안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서 A씨는 B씨의 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때 살해를 마음먹었다고 했다.

A씨는 범행 당일을 회상하며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제발 베란다 창문이 잠겨 있길 바랐지만, B씨가 들어오라는 듯이 창문을 열어놔 범행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B씨가 나와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서 쳐다봤는데, 목을 찌르기 좋은 자세로 마주 보고 있자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칼을 버린 곳은 말하지 않겠다. 칼을 찾으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그렇다"고 말했다.

정신감정에서 A씨는 편집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이것이 범행의 원인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조사관은 "A씨의 내면에는 여성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주장하는 심신미약 주장을 일부만 받아들이고, 징역 15년에 15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 진술 등을 살펴보면 A씨는 범행 당시 망상증으로 인해 의지대로 행위를 통제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회피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은폐를 위해 피가 묻은 흉기를 곳곳에 분산하여 버리는 등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며 방안에서 죽어간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은 그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을 것"이라며 "유족들도 가족이 비참하게 살해당해 치유하기 힘든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 당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던 점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너무나도 잔혹한 점 등 원심의 형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봐야 할 정도로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된다"며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A씨의 상고로 대법원까지 갔지만, 재판부는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 전체 정신질환 환자의 범죄 비중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총범죄자 가운데 정신장애범죄자는 0.6%이고, 강력범죄 비율은 전체의 2.2%에 불과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조현병은 첫 발병 이후 조기에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으며, 재발이 잦아질 경우 정상 회복이 어려워질 위험이 있으니 가능한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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