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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설익은 정책에 추진동력 잃어가는 근로시간 개편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년과의 간담회에서 웃음짓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국정 운영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온 청년 200여 명과 노동ㆍ교육ㆍ연금 등 3대 개혁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실 제공) 2022.12.2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일 8시간, 주 48시간 근로시간 기준을 처음 만들었다. 당사자 합의에 따라선 주 60시간까지 가능했다. 법과 현실의 간극이 컸지만 제정 당시 기준은 그러했다.

꾸준히 늘어나던 근로시간은 주당 68시간을 정점으로 반전되기 시작한다. 현행 주 40시간, 최대 52시간 근로는 2018년 2월이 돼서야 개정됐다. 꼭 5년이 됐는데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본격 시행은 4년 남짓이다. 추가 근로에 관대하거나 부추기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주4일제가 거론될 정도로 시대는 변했다.

국민의 시선은 근로시간 단축을 향하고 있지만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분으로 정반대 정책을 제시했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주 52시간의 총량은 유지하되, 연장근로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산술적으로 주당 69시간 근로도 가능해지게 된다.

근로자들은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일수록 불안감이 컸다. 정부 비판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고 야권까지 가세해 정치공방으로 옮겨붙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제주 한달살기 가능' 등 당정청의 설명·반박·해명이 잇따랐지만 이미 등 돌린 여론에는 백약이 무효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제도 개편 재검토를 지시하며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근로시간 개편 난항은 정책입안 단계부터 예견됐다는 평가다. 카운터파트인 노동계와 최악의 대결구도로 맞서면서 당사자 대표 단체와 논의, 의견수렴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계의 반대 입장표명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치부됐다. 대통령 구상에 부합하는 개편안을 만들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입법 직전 단계까지 이른 정책이 뒤집어진 일차적 책임은 고용노동부가 질 수밖에 없다. 정책 시행시 예상되는 부작용 및 여론 흐름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이다. 알고도 밀어붙였다면 상명하복식 '영혼 없는 공무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향후 보완책을 내놓더라도 고용부 안(案)에 힘이 실릴지도 의문이다. 민심이 나쁘면 물러설 수 있다는 선례가 이미 남았다.
 
심언기 경제부 기자

일개 부처뿐 아니라 정부조직 전반에서 근로시간 개편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60시간 넘게 일하면서 보육·육아는 불가능하다. 주 52시간도 버겁다. 국가가 제공하는 어린이집에 늦은 밤까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무원, 노부모에 기댈 수 있는 일부와 외벌이 가정이 아니라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불규칙한 근로시간제 하에서 출산·보육을 감당할 수 없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인구감소·지방소멸 공포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근로시간 개편이 초래할 이같은 연쇄 작용에 대해선 고용노동부도, 보건복지부도, 여성가족부도, 기획재정부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이들에게서 터져나온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야 할 판"이란 탄식을 당국자들은 찬찬히 곱씹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개편이 전면 백지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만약 무산된다면 설익고 섣부른 정책 추진이 자초한 면이 크다. 정부는 여론수렴부터 다시 한다지만 추진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OECD 최상위권인 현재의 근로시간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사용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탄력적 인력 운용이 가능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를 과연 정부가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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