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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후진국형 국가자격시험 관리의 예견된 참사

[편집자주]

어수봉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2023년 국가기술 자격 실기 시험 운영 관련 브리핑에 앞서 고개숙여 사죄한 뒤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단은 지난 4월 23일 서울시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실시된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 응시한 609명의 답안지를 착오로 파쇄한 사실에 대한 사과와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2023.5.23/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어수봉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2023년 국가기술 자격 실기 시험 운영 관련 브리핑에 앞서 고개숙여 사죄한 뒤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단은 지난 4월 23일 서울시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실시된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 응시한 609명의 답안지를 착오로 파쇄한 사실에 대한 사과와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2023.5.23/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

'하인리히 법칙'은 자연재해가 아닌 대형사고는 우연이나 갑작스럽게 발생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사전 징후가 수십차례 나타나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방치하면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들의 답안지가 채점도 전에 파쇄되는 사상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9월 세무사 2차시험 부실 출제, 채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지 반년 여 만이다. '기관경고' 옐로카드를 받았지만 산업인력공단의 복지부동은 바뀌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국가자격시험의 위상과 중요성에 비해 관리·감독 시스템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답안지 인수인계는 요식적으로 이뤄졌고, '포대'에 담긴 답안지가 파쇄 서류에 섞이는 어이없는 관리부실 행태가 드러났다.

서부지사의 답안지가 본부로 총취합되는 과정에서나마 확인되었으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규정도, 확인에 나설 사명감과 의지를 가진 직원도 없었다. 오히려 한 달여가 지나서야 사고를 인지할 정도의 총체적 난맥상만 확인됐다. 수 년간 공들여왔을지 모를 609명의 수험생의 시간과 노력, 열정은 헛되이 파쇄기에 갈려나갔다.

심언기 경제부 기자


2023년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기 힘든 후진적 '참사'란 장탄식이 터져나오지만 책임을 지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수봉 이사장은 "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즉각적 사퇴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에 대한 여권의 문책론 등 정치적 공방은 논외로 하더라도, 수험생 및 15만명이 넘는 응시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공공기관의 책임자로서 적절한 처신인지 의문이다.

국가자격시험의 공신력이 크게 훼손된 점도 뼈아프다. 산인공은 재시험 방침을 밝혔는데 이에 대한 불만과 형평성 문제제기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문제은행식 출제방식이어서 난이도 조정 등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안이한 인식만 보이는 실정이다.

이번 사고는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할 소지가 높아 보인다. 1차적으로 국가기관의 송무를 전담하는 정부법무공단 등에서 맡더라도 이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다. 이 모두가 국민이 낸 세금이다.

고용노동부가 특별감사팀을 꾸리고 산인공에 대한 감사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간 시스템 부실을 짚어내지 못한 고용부도 책임에서 비켜설 수 없는 만큼 철저히 사고원인을 규명해내야 한다. 이에 기반한 일벌백계 문책, 시스템 전반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 이번 사고가 유일무이한 사고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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