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美 법원 판결, 뭐가 빠졌나…채워져야 할 입법 공백[리플 소송]②

미 법원,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기준' 세운 것은 아냐…공백 여전
일반 투자자 보호책도 미비…"의회, 입법 박차 가할 것"

[편집자주]

가상자산 리플(XRP) 일러스트.
가상자산 리플(XRP) 일러스트.

가상자산 리플(XRP) 발행사 리플랩스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간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미 법원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XRP 판매 행위는 증권법 위반에 해당하고,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XRP가 판매된 것은 증권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이는 리플랩스의 XRP 판매 행위에 대한 판결이다. XRP의 증권성 자체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 이에 가상자산 업계가 기대했던 △증권성 판단 기준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 등의 내용은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위테스트' 적용했지만…'증권성 판단 기준'은 아냐

지난 14일(한국시간)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SEC와 리플랩스 간 소송에 대한 약식 판결을 내놨다. SEC는 지난 2020년 말 XRP를 증권으로 보고, 리플랩스의 XRP 판매 행위가 '미등록 증권 판매'로 증권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XRP 판매 행위는 증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일반 투자자에게 XRP가 판매된 것은 증권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등 두 가지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1940년대에 만들어진 증권 계약 판단 기준 '하위테스트(Howey Test)'를 또 한 번 적용했다. 하위테스트는 지난 1946년 미국 플로리다에 오렌지 농장을 가진 W.J.하위라는 농장업체와 SEC 간 소송에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준용한 기준이다. 당시 법원은 하위의 부동산 계약을 증권 투자 계약으로 판단했고, 판단에 쓰인 기준은 현재까지 '증권 투자 계약' 해당 여부를 가리는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법원은 이번 리플 판결에서도 하위테스트를 적용했다. 하위테스트의 기준은 △자금 투자가 이뤄졌는지 △자금이 공동 사업에 투자됐는지 △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지 △그 이익이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등 네 가지다. 법원은 리플랩스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XRP를 판매했을 때, 기관투자자들은 리플랩스의 노력으로 XRP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 기대했으므로 양측 간 증권 투자 계약이 성립한다고 봤다.

그간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판단할 때 하위테스트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지속돼왔다. 약 80년 가까이 된 법을 신사업인 가상자산에 적용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하위테스트는 '증권 투자 계약인지' 판단할 때 쓰는 기준으로 활용했을뿐, 가상자산의 증권성 자체를 판단하지는 않았다.

◇증권성 판단 기준·투자자 보호책, 향후 입법서 마련돼야

이를 두고 이번에도 미 법원이 기존 법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판결을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위테스트는 여전히 증권 계약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만 쓰였고, 업계가 기대하던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사법부는 윈칙적으로 기존 법리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하지 않는다"며 "투자계약은 금전 투자, 공동 사업체, 이익 기대, 제3자의 노력 등 여러 요소들로 구성되며 가상자산은 가치 교환 매개체로서 그러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SEC는 그동안 리플(XRP)을 비롯한 특정 가상자산들을 증권으로 간주하고, 거래소들을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도 솔라나(SOL), 카르다노(ADA), 폴리곤(MATIC) 등 무려 19개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간주했다.

이 같은 SEC의 행보는 가상자산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또 SEC의 증권 판단 기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번 리플 판결에서도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 만큼, 기준 마련의 필요성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기준이 마련돼야 증권성 판단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인 국내 금융당국도 이를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정 센터장은 "규제 공백을 틈타 법리에 벗어나는 유권해석을 내세워 관할권을 주장해 온 SEC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에 더욱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 이후 규제 공백을 매우기 위한 미국 의회의 입법 과정에 박차가 가해질 것"이라며 "미국 의회에는 현재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백히 하기 위한 10개가 넘은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투자자 보호 관련 내용도 이번 판결에서 빠졌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법원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판매되는 토큰이 증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매하는 일반 투자자들은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방안 역시 향후 입법을 통해 마련될 전망이다.

존 리드 스타크(John Reed Stark) 전 SEC 집행국장은 링크드인을 통해 "미 법원의 리플 판결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똑같은 증권이 어떤 때(기관투자자에 판매될 때)는 증권이고, 어떤 때(거래소에서 판매될 때)는 증권이 아닐 수 있다는 판결은 개인 투자자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관 키워드
로딩 아이콘